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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엔

물리치료사의 몸 이야기(비와 건강)

“온몸이 다 쑤셔. 오늘은 진짜 엄살이 아니라니깐.”


 치료 시간이면 유독 엄살로 실랑이를 벌이는 환자분이시다. 당사자는 엄살이 아니라고 하지만 ‘진짜로 아픈 거 아니죠?’라는 말에 씨익 웃으며 들켰다고 말한 전과 덕에 의심을 키우곤 했다. 오늘도 치료 시작 전부터 아프다는 말로 시작한 나머지 치료 테이블로 옮기는 것부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오늘은 약하게 치료하겠다는 설득을 한참이나 하고 나서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돌아보던 찰나. 아!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의 신체는 위협을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에 대한 반응이 근본에 깔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인간에게 생존을 위한 본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반응이 너무 과할 때 있다.

 만성 통증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사람은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뛰어난 적응 능력을 통증에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만성 통증이다. 지속적으로 유해한 자극에 노출된 몸이 약한 자극에도 통증 신경에 반응하도록 적응한 것이다.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몸의 위협을 알리기 위해 나타난 통증에 적응했는데 둔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민감해지다니. 우리 몸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런 만성 통증을 겪는 사람들이 특히 힘들어할 때가 바로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오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바뀐다. 날은 흐리고 대기압과 기온이 낮아진다. 궂은 날씨 덕에 활동량은 줄어든다.

“비가 오려나 무릎이 아프네.”

 살면서 한 번은 들어본 흔한 이야기일 것이다. 비가 오기 전날이면 어르신들께서 조금 빠른 일기예보를 하셨다. 신기하게도 예측은 기가 막히게 맞았고 더욱이 이런 일들이 전 세계 공통으로 일어나면서 많은 과학자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일례로 앞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실험이 있다. 우선 실험 대상자는 만성 통증 환자이다. 대상자로 선택된 사람들을 기압, 온도, 기온을 조절할 수 있는 방에 들어가게 한 후 장마철 기후를 재현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통증 호소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놀랄 필요도 없이 대상자 대부분이 통증을 호소하였다.      


 그렇다면 비가 오면 몸이 아프다는 건 알겠다. 문제는 왜 아픈 것일까?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견이 있는 편이다. 원인을 설명하는 사람마다 다른 관점을 내놓기에 정확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설명에 따라 크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낮아진 대기압이다. 비가 오면 기압이 낮아지며 저기압 상태에 놓이는데 신체 외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 내부의 압력은 높아진다. 이로 인해 관절 내 압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본다. 관절이 부푸는 만큼 주변을 싸고 있는 막이나 신경을 눌러 자극하니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기압을 감지하는 ‘내이’라는 구조물이 있다. 센서에 변화가 감지되는 순간 몸의 스트레스가 되어 교감신경을 활발하게 한다. 교감신경은 몸을 깨워주는 신경이다. 특히 만성 통증 환자는 이런 자극에 더 민감하다. 결과적으로 노르아드레날린 등 호르몬이 분비되며 신경을 자극하게 되고 통증으로서 증상이 나타난다.

 둘째. 낮아진 온도와 높아진 습도이다. 낮아진 온도는 체온을 낮춘다. 낮아진 온도는 관절과 주변 구조물을 뻣뻣하게 하며 움직임을 둔하게 한다. 그리고 높아진 습도는 체온의 증발을 막는다. 수분 증발이 어려운 만큼 체내 수분량이 많아지며 부종이 늘어난다. 이와 같은 현상들로 인해 혈액순환이 적어지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물질의 전달이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이는 통증과 연결된다.

 셋째. 일조량과 움직임의 감소이다. 보통 날씨가 좋지 않으면 활동이 줄어든다. 그리고 일조량이 줄어들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들게 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움직임의 감소와 함께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연구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통증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만큼 이 또한 통증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가 추론일 뿐 답은 되지 않는다. 최근 통증 분야의 권위 있는 논문 저널에서 날씨와 관련된 통증 연구 결과를 이야기했다. 통증과 날씨가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를 낸 논문은 21개,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를 낸 논문은 20개로 뚜렷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더 모호해진 상황이다. 어쩌면 비가 오면 몸이 아프다는 믿음이 괜한 통증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비가 오는 날엔 많은 환자분들께서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신다. 평상 시라면 참고 견디게 할지 몰라도 비 오는 날만큼은 나도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해 드리려 노력한다. 상관관계야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겠는가. 경험이 아프다고 말해주는데. 다만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모든 원인에서 통증 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기분도 활동량도 가라앉는다는 점.


“진짜 약속할게요. 오늘은 살살할 테니까 운동 조금만 해요.”


 움직이지 않으면 더 아플 수 있기에 오늘도 나는 달래 가며 운동을 시킨다. 비가 오는 날엔 참 여러 가지로 힘들다. 치료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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