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즐겨 온 사람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
'재즈'란 뭘까?
'재즈'라는 단어 자체가 풍기는 느낌이 있다. 어딘가 멋스럽다고 해야 할까?
나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선율.
유명 소설가의 취미(당신도 알고 있듯 그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뉴욕 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에 연기가 자욱히 깔려 있고 그곳에 이끌린 듯 들어가보니
음악의 향연, 재즈가 들릴 것만 같은! 뭐 대충 나에게 재즈란 이런 느낌이다.
말하자면 친해지고 싶은데 어려운 친구랄까?
엄청 고풍스러운 것도 아니고 클래식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아닌데
어딘가 쭈뼛쭈뼛 그 친구 앞에만 서면 고개를 살짝 떨구게 되는 그런 존재!
이번 도쿄여행은 내 짝꿍과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사실 만남을 가지던 초창기부터 우리는 둘 다 재즈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 꼭 가까운 이웃나라의 재즈의 성지 <블루노트 도쿄>에 가자고 약속한 바 있다.
이게 이렇게 이뤄질 줄은 몰랐지.
<블루노트 도쿄>는 재즈바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재즈공연장에 가깝다. 지정석별로 가격이 다 다르고 기본 1만엔, 약 10만 원 이상은 든다고 보면 된다. 가서 술과 안주 하나 간단히 시켜도 인당 15만 원 정도 지불해야 하는 꽤나 고가의 나들이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막상 예약을 진행할 때 짝꿍은 꼭 가야 하냐며 살짝 볼멘소리를 했다!!!!!!!)
그 날 공연자는 마커스 밀러, 베이시스트 재즈연주자라는데 일단 처음 뵙겠습니다! 이고요.
유튜브로 영상도 보고 음악도 들어봤는데 영 집중도 안 되고 나쁘지 않은 정도였다.
역시 쉽사리 친해지기 어려운걸까? 재즈..? 그래도 한번쯤 경험해봐도 좋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다보니 여행 첫날 저녁 공연을 가게 됐다. 숨겨서 뭐하리, 우리는 그 날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도착했고 강행군으로 이동하고 관광을 했다. 공연시간이 다가올 때쯤 우리는 깨어있은지 17시간 정도 된 상태였다. 들어갈 때도 안내 방송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하고, 좌석별로 들어가야 했다. 자리에 앉아보니 어쩔 수 없이 음료랑 메뉴 하나는 시켜야할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고(분명 아무도 강요 안 했는데도 말이다!) 벌써부터 돈을 많이 쓴 것 같아 내 안의 절약세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 30분을 그렇게 무대 주변 사진을 찍고 나온 음식을 거의 다 먹고(마치 영화 시작되기 전에 팝콘을 다 먹은 것 마냥) 그제서야 아티스트들 등장! 뭐지, 흥분된다...!
마커스 밀러다, 포스터에서 본 마커스 밀러가 눈앞에 있는 걸 보니 뭔가 흥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블루노트의 음향 설비가 정말 훌륭했다. 마커스 밀러가 베이스 한 번 튕기는 순간 내 가슴도 튕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재즈는 재즈가 아니였구나!!?? 진짜 재즈가 여기 있었구나?? 와우!
모두가 함께 재즈의 선율에 맞춰 고개를 까딱였다. 신기했다. 정말 신명나고 가슴 떨렸다.
공연으로 이렇게까지 고양될 수 있구나 싶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바하시는군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이 흘러가는 시간이, 그 시간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쉽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다채로운 표정의 일본인들을 본 게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일본인의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블루노트 도쿄에도 드레스코드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없다. 모두 자유로운 복장이다. 완전 캐쥬얼한 사람도 있었고 회사 업무를 마치고 정장 차림 그대로 온 사람도 있었고 장 보러 왔다가 들른 것 처럼 집 앞 슈퍼에 온 것처럼 입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약간의 원피스, 꽤 꾸민 모습의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그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음악을 즐겼다.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겨,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타고 때론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취미로 재즈를 즐겨온 그들이 이 공연장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아주 세련되고 점잖으면서도 흥겨움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멋진 문화였다. 자연스레 따르게 됐다. 그리고 그게 참 부러웠다. 취미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키워갈 수 있는 문화가 있는 그곳이.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화나 인터넷으로 공연 스케줄을 확인하고 예약한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서 약 1시간 반을 찰나의 시간처럼 온 마음으로 즐기다 오는 거다. 그러한 취미 활동이 일상생활의 얼마나 큰 힘이 될 지 우리는 가늠할 수 있다. 지금도 최애에 대한 덕질 활동을 삶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고령화가 매우 진행된 이 일본 사회가 그래도 여전히 꽤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건 어쩌면 꾸준히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잘 가꿔져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흑백의 지겨운 현생에서의 취미생활은 그 삶에 색깔을 입힌다. 일률적인 업무 처리를 요구 받고 딱딱한 규칙을 지켜야하는 각진 사회에서 취미 생활은 흥미로운 선율을 만들어주고 리듬을 부여해준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하는 오늘의 일도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지고 좀 더 할만해진다. 주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나 고통을 잘 소화하고 해소할 곳이 있다는 것! 오래 할수록 숙성되고 그 안의 세련됨이나 트렌디함을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 그게 가능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 그게 지금의 일본 사람들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아닐까.
신주쿠역, 시부야역 등에서 쏟아져나오는 많은 월급쟁이들이 사실은 어느날 저녁, 소매를 걷어매고 재즈 선율을 즐기러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동력삼아 오늘도 한 기업의 톱니바퀴가 되어 잘 굴러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을 해봤다. 그만큼 블루노트 도쿄에는 여러 행복한 얼굴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도쿄에 오면 나는 또 블루노트 도쿄에 갈까? Of course! 물론!! 이 분위기를 아예 몰랐으면 몰랐지, 단 한 번만 느껴본 사람은 없을 거다. 블루노트 도쿄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가서 오감을 다 이용해 '재즈'를 즐기고 '재즈를 즐기는 문화'를 느껴보기를!
덧. 몰랐는데 좋은 음악은 술을 부른다. 맥주 한 잔에도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리는 짝꿍은 재즈의 선율에 몸을 던지더니 한정판 마커스 밀러 칵테일을 추가로 주문했다. 내가 여러 번 반대했으나 하회탈 같은 미소와 함께 검지손가락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한 잔 더를 외쳤다. 그 모습이 너무 얄밉고 고까웠지만, 이런 순간도 다신 오지 않겠지, 그리고 참 술이 쭉쭉 들어가는 공연이긴 해서 추가로 칵테일을 주문해주었다. 우리는 여행 첫날 밤의 블루노트 도쿄를 여행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한다.
Blue note TOKYO 공식 홈페이지 - 여기서 공연 스케줄 확인 및 예약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