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미술관→이노가시라공원→기치조지 둘러보기=최적의 도쿄 일일코스!
도쿄에 세 번 가면 한 번쯤은 꼭 <지브리미술관>에 다녀 온다.
왜냐고? 나의 일본어의 출발점이 바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하하!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 어째저째 알게 된 일본인에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당연히 좋아하고 당연히 봤겠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물었는데
자신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이 얼마나 편협한 편견인가!)
그만큼 나에게 일본 = 지브리 애니메이션 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에도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였고, 다시 일본을 방문할 때도 이따금씩 생각나는 곳.
시간대별로 입장으로 어느 정도 관람객 수를 조절하고 있지만...그럼에도 이곳은 늘 붐빈다.
일본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고, 연령대에 따라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며 또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전시하는 흥미로운 미술관이기도 하다. 늘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른 세계로 데려가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운 기분이 들지만 이상하게 녹슬지 않고 늘 곱게 단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면모도 선보이는 신비로운 미술관이다. 그러니 해외 많은 팬들이 찾아오기까지 하지. 이곳이 늘상 붐비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내가 지브리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굳이 순서대로 줄지어서 관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줄 서는 걸 좋아한다. 나는 이 습성이 정말 싫다. 특히 미술관에서 정렬된 순서대로 줄 서서 차례차례 작품을 보는 게 너무 고역이다. 특별전시회의 경우 유독 그 흐름에 맞춰 큐레이션 되어 있긴 하지만 본인 입맛대로 요리조리 골라 먹는 것도 전시회의 묘미인거늘...시작부터 줄 서서 보지 않으면 도중에는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는 그 질서정연함이 너무 싫었다. 혈기왕성하던 20대 때 더 싫어했던 것 같다.
근데 <지브리미술관>은 그런 게 없다. 마음대로 봐도 된다!
전시회 구조상 처음부터 보는 게 좋은 건 당연히 있다만 담당 스탭들이 줄 서서 보고 있는 듯 하면
"따로 순서는 없으니 자유롭게 관람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준다. 그 말이 얼마나 청량하게 느껴지던지!
애니메이션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작업실에 몰래 견학온 것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작중 풍경이 대부분 유럽을 참고한 경우가 많아서인지 풍경용 사진집이 여러 첩 놓여져 있다. 배경 장면 중 프랑스가 많았는데 그 두꺼운 배경용 사진 앨범을 프랑스인들이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듯 각자에게 유독 의미있는 씬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 <지브리미술관>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줄 서지 말고 자유롭게 구경하자.
<지브리미술관>에는 "토성좌"라는 작은 영화관이 있다. 10~15분 정도의 영화를 다같이 감상한다. 귀여운 벽면과 천장화가 그려진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기다란 등받이 쇼파에서 서로 다리가 맞닿을 정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를 감상한다. 자그만한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쇼파 등받이를 의자로 이용할 수 있다(스탭분들이 상영 전에 권하기도 함). 그리고 가운데 계단까지 사람들의 엉덩이로 채우면 안내 및 주의 사항을 스탭분이 간단히 설명해주고 영화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대사가 없다. 무성영화는 아니고 누가 봐도 알아 들을 수 있을법한 간단한 내용이다. 인사말, 놀라는 반응, 의성어, 의태어로 구성된다. 내가 이번에 본 건 <숙소 찾기>라는 단편영화인데, 의성어, 의태어로만 구성되어 있다. 가끔 "또~와~(またおいで〜)", "고맙습니다(ありがとう, 근데 이게 빨리감기한 것 마냥 알가또자이마스 이런 식으로 효과음처럼 들린다)" 요 정도 대사! 아이들도 히죽히죽 웃어대고 어른들도 꿀렁꿀렁 지브리스러운 표현에 웃음을 내뿜곤 했다. 우리는 무슨 마을에서 큰 스크린으로 처음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냥 즐거워했다. 다같이 무언가를 함께 보고 그 감정을 공유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지, 라는 걸 느꼈다. 어이없지만 예전에 <신라의 달밤>을 보면서 다같이 웃어댔던 기억이 났다(아아, 내 나이 예측되어버려...!) 여튼 분명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이유는 큰 스크린, 음향 뿐만 아니라 함께 한다는 유대감도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이고 흥분되는 소재에 늘 노출된 상태 플러스 거기에 무뎌진 상태였는데, 여기에 오면 본연의 즐거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뭔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어서 미쳐버려! 도파민 난리나! 이런 건 없지만, 옴팡 절여져 있던 짜디짠 내 갬성이 시냇물에 씻겨져 약간의 짠맛에도 감칠맛을 제대로 느껴버리는 상태가!! 되는 거다. 뭔말이지? 식재료의 본연의 맛을 찾았다고나 할까?
이래저래 돌다 보면 아무리 동심을 찾았다 한들 꽤 많은 인파에 지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게 된다.
<지브리미술관> 입장과 퇴장을 자연스레 연결해주는 이음새같은 역할이 미술관 야외 공간이다.
게다가 <지브리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실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즉 바깥에서는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찌보면 유일하게 찍을 수 있는 곳! 밖으로 나가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는데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버스 대형 인형이 놓여진 곳을 지나서 나가는 걸 좋아한다. 이 광경에 대해 올 때마다 느끼는 게 참 다르다.
20대 때는 나도 고양이버스에서 사진 찍고 싶다, 나도 즐겁게 놀 자신 있는데,
20대 후반 애들은 참 에너지 넘쳐, 더운데 저렇게 털 복실복실한 곳에서 놀고 싶을까?
30대 초반 와, 애들 정말 좋아하겠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데리고 오고 싶다.
30대 중반 유일하게 부모들이 쉴 수 있는 곳이군,
(가장 정상에 올라 선 아이를 보며) 용기가 상당한 친구야? 크게 되겠어!?
바깥 공간은 마치 지브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공간이 펼쳐지는데 딱히 유럽같지도 일본같지도 않은 게 참 묘한 분위기다. 그간 못 찍었던 한이라도 푸는 듯 여기 나오면 모두가 사진을 엄청 찍는다! 옥상에는 <천공의 섬 라퓨타>에 나오는 거대로봇이 있다. 영화 내용을 의식한 듯, 로봇에 살짝 뚫린 구멍 속에서 풀 한 포기가 자라고 있다. 한 일본인 여성 분이 "너무 컨셉에 철저한 거 아냐?"라며 웃으셨다. 그게 지브리의 맛! 아니겠어?
그리고 당연히 로봇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한다! 호호!(여기선 줄서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모처럼이니 로봇과 처음 만난 시타처럼 로봇과 마주 선 채로 사진을 찍었다. 정말 부끄러웠다. 그래도 몇 년 후 또 가게 되면 또 찍어야지! 이런 사진 찍는 재미를 응집시켜둔 곳이 새로 생겼기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 새로운 곳은 바로 나고야에 있는 <지브리 파크>다. 안타깝게도 나도..아직 못 가봤다). 밑에는 카페테리아가 있고 그리고 지하에는 토토로 메이네 집 앞에 있는 펌프로 물을 기를 수 있는 우물, 장작 등이 놓여져 있다. 정겨우면서도 만화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이리저리 야외를 왔다갔다 하며 사진을 찍다보면 갑자기 생긴 듯한 출구가 보인다.
지금까지는 늘 버스를 타고 미타카역으로 향했는데 불현듯 그 출구를 보고 나가고 싶어졌다.
그 출구는 키치조지의 유명한, 랜드마크와도 같은 공원 <이노가시라공원>으로 바로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 <지브리미술관>과 <이노가시라공원>은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 의도하지 않고 만들었을리가 없다!!! 미술관 컨셉 도면과 사진이 담긴 얇은 도록이 있는데 그 도록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작성한 내용이다.
제목은 "이런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어쩌구저쩌구 중략)
공원과 (미술관의) 관계는...
푸른 녹지를 소중히 하는 걸 넘어서서
10년 후에 더 좋아지는 플랜을 짜고 싶다
미술관이 생겨서 주변 공원도 더 볼거리가 많아지고
공원이 좋아지니 미술관도 좋아졌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형태와 운영 방법을 찾아내 진행하고 싶다!
(위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 "관장의 인사말(館主のことば)"에도 나와있다.
https://www.ghibli-museum.jp/kansyu/)
결국 이노가시라 공원은...하야오감독의 빅픽쳐 속에 들어가 있었다!
스리슬쩍 팔짱 껴버린 거지. 우리 같이 갑시다, 윈윈? 오케이? 라며.
그만큼 <이노가시라공원>과 <지브리미술관>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홀린 듯 <이노가시라 공원>을 걸었다.
궁금한 내용은 전혀 아니지만, 이어서 계속...
(공원 이미지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