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오르다

등산이 이런거였어?

by 쟝냥

높은 곳이라면 질색하는 겁쟁이가 맨발+크록스+롱치마+셔츠 차림으로 산을 올랐다.


오랜만에 오빠의 요청으로 온 가족이 함께 움직였다. 오빠와 엄마, 아빠는 일을 다니느라 바쁘고, 나도 이래저래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가족끼리 당일로 소소하게 놀러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엄마가 퇴근하고 나서 움직여야 했기에 가족 나들이는 저녁이 되어서야 진행될 수 있었다.


갈비, 짜글이, 순두부찌개, 중식, 호프집 등등.. 다들 4인 가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기가막힌 저녁 메뉴를 생각해내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러다가 은해사 산책도 갈겸 코다리찜을 먹으러 가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여행만 가면 자주 싸우는 아주 보편적인 집인데 그날따라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화목하고 행복했다. 영천에서 먹었던 ‘정코다리’의 코다리찜까지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처음에는 은해사로 산책을 갔지만 밤이라 들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목적지를 갓바위로 옮겼다. 나는 산을 정말 무서워했다. 올라갈 때의 숨차고 힘듦보다는 내려갈 때의 공포감이 컸다. 어릴 때 가파른 산을 내려갈 때 미끄러질 뻔한 기억이 있어서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삶에 등산은 존재하지 않는 활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날은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였기에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고 오랜만에 오르게 된 산이라 이제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계획에 없던 등산으로 셔츠에 긴 치마, 맨발에 크록스로 산을 오르게 되었다. 어릴 때 만큼 가파르고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래를 내려다 볼 때면 아찔함을 느꼈다. 중간에 힘이 들어 내려갈까 했지만 이왕 온거 정상까지 올라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쉽게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지던 요즘 작은 것 하나 성취해내기가 버거웠다. 그저 걸어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등산마저 포기한다면 스스로를 ‘버거운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한발 씩 내딛을때마다 내려갈 때의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왔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상까지 올랐다.


등산이 이런거였어?


정상에 올랐을 때 드는 첫 생각이었다. 정상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다 끝내 탁 트인 정상을 마주했을 때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부처님은 압도적인 크기와 분위기로 넓게 펼쳐진 전경 속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은 하늘이 뻥 뚫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무거운 중압감이 느껴졌다. 매섭게 부는 바람은 구름의 형태를 가지고 빠르게 눈 앞을 지나갔다. 강한 바람이 커다란 불상을 마주했을 때는 그 의미를 아는 것인지, 잠깐동안 매서움을 없애고 불상 곁에 머물다 스쳐지나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계속해서 절을 하고 있는 사람, 불상 앞에 앉아 불경을 외우는 사람, 가만히 앉아 소원을 비는 사람.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산 정상의 무게감을 더하는 듯 했다. 어떤 것이 사람들을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매트를 깔아 절을 하고 앉아서 소원을 빌어보았다.


‘무슨 일이든 두 번 안에 성공하게 해주세요‘

별 것 없는 소원이었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더 진지하게 솔직한 마음을 빌어보았다. 꽤 오랜 시간을 앉아있다가 산을 내려갔다. 맨발에 크록스를 신은 탓에 발톱이 빠질 듯이 아파왔고 다리는 후들거려 미끄러질 뻔 하기도 했지만 올라갈 때의 두려운 마음보단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어릴 때의 무서움으로 기피해왔던 등산은 생각보다 더 쉽고 상쾌했다. 그동안 등산의 매력을 모른채 무작정 싫어해왔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넓었다. 도전적으로 삶을 살아야 할 하나의 이유를 찾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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