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과묵한 미용실 단골입니다 p.146
나는 정말이지 그 긴 시간 동안 남의 자식 자랑이나 낯 모르는 손님들의 가정사 같은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두통이 올라와 지금 미용사가 만지는 게 내 머리인지, 남의 머리인지조차 헷갈릴 즘에야 드디어 중세 유럽의 고문 의자처럼 느껴지던 유압 의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머리는 미용사가 바뀌었는데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남인숙, 21세기북스, 2019.04.26.)
지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고 있다. 옆머리가 자라면서 귀속으로 들어가서 귀를 간지럽히는 것과 머리를 말릴 때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된다는 것 이외에는 큰 차이를 모르겠다. 직장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머리를 기르고 있냐고 묻는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머리 좀 자르라고 말하기도 한다. 평소에 나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많은 사람들이 자란 나의 머리를 보고 다양한 의견을 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이 짧은 머리로만 살았구나 되돌아볼 뿐이다.
여전히 내성적이라 내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라리 머리를 기르니 미용실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니 마음은 편하다. 나이가 많으신 부모님은 볼 때마다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하실 테이고 또 더워지면 언제 마음이 변해서 짧게 머리를 자를지 모르지만 뭐든 나는 변하지 않고 나일뿐이다. 나는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