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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Apr 13. 2024

노안

사무직의 적

루테인을 복용해도 눈은 계속 침침하다.


"너는 안 늙을 것 같니!"

과거 숫자를 틀리는 선배들을 보면서 성의가 없이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 나도 모니터의 0, 5, 6, 8 등 숫자들이 흐릿하여 구분하기 쉽지 않은 지경이라 비로소 선배들의 실수가 이해되었다. 숫자가 틀렸다는 지적에 너는 안 늙을 줄 아느냐는 선배들의 하소연이 이런 상황이었구나 싶다. 수많은 엑셀 데이터를 확인하고 입력하는 일은 이제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되었다. 나의 직장생활의 적은 나의 노화인가 보다.


"안 더워?"

패션의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힘들어서 이제는 패션 따위는 무시하고 편안한 옷만을 추구하고 있다. 매번 맨 앞에 걸려 있는 옷만 입는 것 같아 차라리 교복처럼 똑같은 옷만 살까 고민도 한다. 빠르게 변하는 계절을 따라가지 못해 어제와 같은 겉옷을 입고 있으니 땀이 난다. 다들 날이 이렇게 더운데 왜 두꺼운 겉옷을 입고 있냐고 묻는다. 아직 낮밤으로는 춥지 않냐고 반문하지만 사실 땀은 난다. 계절은 나의 속도를 이미 지나쳐 날마다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변화들이 나를 빼놓고 빠르게 변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해 전쟁터에 홀로 남겨진 것만큼 기분이 좋지 않다.


"잡념과 짐이 늘어난다."

자꾸 다양한 도구들을 보면 소유하고 싶어 짐들이 늘어난다. 사무실 책상에는 자꾸 초점이 흔들려서 각기 다른 사이즈의 투명자들이 늘어났다. 학교에 처음 가서 줄을 제멋대로 건너뛰며 책을 읽어 자를 대고 책을 읽던 기억이 다시 나에게 적용된다. 작은 글씨는 도무지 읽을 수 없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하여 보는 경우가 늘어났다.  여전히 출력물의 자료들을 재입력하는 원시적인 일은 밝은 눈과 인내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유통기한을 확인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은 포기했다. 나의 노화를 대체할 도구들은 늘어가고 포기하는 것들도 늘어만 간다.


고민하느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p.129

해결 가능한 고민이라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고민은 그 순간부터 '해결 과제'가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해결을 위해 움직이면 됩니다.

한편 해결하기 힘든 고민은 계속 붙잡고 있어도 해결 방법이 없으므로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아깝습니다. 하루빨리 고민을 떠나보내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낫겠죠.

《케이크 먹고 헬스하고 영화 보면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다》(멘털 닥터 시도, 밀리언서재, 2024.03.20.)


이제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를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읽을 책을 고를 때도 너무 작은 글씨의 책은 선택하지 않는다.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흘려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먼 산을 보면서 점점 탄력을 잃고 있는 망막의 근육을 키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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