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를 흘려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무탈하게 살아왔다. 저녁에 학원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신호등에서 코피가 터졌다. 뜬금없이 콧물이 흐르네 하며 쓱 손등으로 코를 훔쳤더니 붉은 코피가 보인다. 그냥 평소처럼 짧게 아이를 데리고 오는 길이라 생각해서 바지에 휴대폰만 있다. 정작 겨울 내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휴대용 휴지도 없다. 아직 아이의 버스가 도착하려면 5분 정도가 시간 여유가 있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얼굴은 피범벅이고 코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급하게 손이랑 얼굴에 뭍은 코피를 닦아내고 휴지로 코를 막아본다.
"고개를 숙였더니 코피가 나니 기가 막힌다."
얼룩진 바닥에 걸레질을 하는데 걸레 위로 코피가 뚝뚝 떨어진다. 고개를 숙이고 힘을 준 것이 문제였을까 싶다. 다시 오른쪽 코에 휴지를 돌돌 말아서 막아본다. 그랬더니 코피의 양이 많은지 막지 않은 왼쪽 콧구멍으로 피가 넘쳐흐른다. 아무래도 오늘 바닥 청소는 포기다. 그 후로도 뜬금없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코피가 터졌다. 아이의 비염으로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아이와 함께 접수해 본다. 병원에서 코에 면봉으로 연고를 발라주시고 코 안쪽이 헐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또 코피가 날 수도 있다고 하신다. 코피가 일주일 동안 4번 정도 난 것 같다고 하니 다시 코피가 나면 지지는 방법을 쓰자고 하신다. 코를 지지는 방법이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지진다는 말이 사실 무섭다. 아침저녁으로코에 연고를 열심히 발라본다.
"10시 30분부터 회의가 있습니다."
30분 남은 회의를 준비하며 자료를 챙기는데 또 코피가 흐른다. 결국 멈추지 않는 코피 때문에 코를 막고 코피가 묻은 회의자료를 교체하면서 회의에 들어간다. 친한 분들은 다들 어디서 싸우다 왔냐고 농담을 한다. 처음 만나는 분들은 많이 피곤하신가 보다고 위로해 주신다. 싸우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지만, 자꾸 뜬금없이 터지는 코피로 속이 터진다. 결국 오전 내내 코에 휴지를 막고 회의를 하고 돌아왔다. 휴지를 빼고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는 휴지를 빼고 회의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퇴근하는데 또 코피가 터졌다. 아무래도 연고만으로는 갑자기 터지는 코피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 갔다. 아무래도 코를 지진다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반복되는 코피, 비염의 신호 p.122
어쩌다 한두 번 코피가 나는 것은 지혈만 잘 되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코피가 자주 난다면 콧속이 건조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더 나아가 비염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코피가 나지는 않더라도 수시로 코를 만지고 심하게 비벼도 혹시 비염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코가 뚫리면 인생도 뚫린다》(이상덕, 비타북스, 2024.01.05.)
코를 휴지로 막고 방문한 병원에서 선생님은 '또 코피가 나는군요.'라면서 오늘은 지지자고 하신다. 코에 식염수를 적신 거즈를 넣고 대기하는 시간을 갖고 장비를 세팅하신다. 코 안의 거즈를 제거하고 마취주사를 놓아주신다. 그리고 전기핀셋 같은 모양의 기계를 코에 넣어 지지는 치료를 하신다. 사실 마취주사가 더 아프다. 사실 마취 이후는 그냥 느낌만 있으니 마취주사가 치료 중 가장 아픈 통감이다. 아이는 코에 마취주사를 맞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하지만 딱히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겨울철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는 것 말고 지질수 있는 게 많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