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노안이라 부럽다는 농담을 많이 들었다. 그때의 나의 사진을 보면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그 차이를 느끼는 건 나만 가능한가 싶다. 그리고 노안이라 딱히 대접받는 것도 아는데 좋은 일이 뭐가 있겠는가 싶다. 내가 보기엔 그냥 그 시기의 얼굴로 보이는데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어색하다. 하긴 나랑 동갑이어도 아직도 소년 같은 사람도 있고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 분명 개인차가 있다. 이왕이면 곱게 나이 들고 싶다.
"잘 관리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모두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하지만 관리하기 쉽지도 않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살을 빼려고 해도 운동도 해야 하고, 식단 관리도 해야 한다. 하지만 식사를 하기도 전에 이미 배는 나와있는 나의 상황이 현실이다. 도대체 해야 할 일들은 쌓여 있는데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나 어지럽다. 청력검사처럼 귀 기울이고 있다가 소리가 나면 소리가 나는 쪽의 버튼을 눌러야 하듯 바쁘고 바쁜 현대인이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 혼자 스스로를 위로한다.
"갑자기 계절이 변한 기분이다."
아직 책상의 선풍기도 치우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씨가 변했다. 그리고 달력도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나는 올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지긋지긋했던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달려가는 기분이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통장을 스치고 사라지는 것처럼 갑자기 나의 시간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난 올해 무엇을 했을까? 올해 꼭 하려고 했던 것은 언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밀려온다.
의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삶에의 맹목적 욕망에서 벗어나려면 p.136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인생의 광경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는 거친 모자이크 그림과 같으므로 그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 2012.01.02.)에서 어부 산티아고는 먼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힘들게 잡지만 결국 상처만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인생이라는 게 행운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큰 상처와 정산승리만 남는다. 그래도 이왕이면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큰 행운과 한 번은 마주하고 싶다. 오늘은 뜬금없이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서늘한 날씨에 안 춥다고 최면을 걸고 있다.
"인간은 패배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나는 여차하면 히터를 사용하는 노안의 인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