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체력은 불친절하다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간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지만 버스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떠나버렸다.
"날도 덥고 좀 태워주면 좋았을 텐데."
사거리 교차로 신호등이 일시에 변경되면서 할아버지가 대각선 버스 정류장에 정차 중인 버스를 향해 달려간다. 아직 교차로 신호도 변경되지 않고 버스 앞에서 손도 흔들었지만 버스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굉음을 내고 저만치 달려간다. 버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태워달라는 것도 아니고 날씨도 더운데 좀 태워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생각하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버스를 놓친 할아버지도 그걸 보고 있는 나도 맥이 풀린다.
"오전에는 친절해야지 하고 나오는데 오후가 되면 친절이 사라진다고 해."
아내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수오서재, 2018.05.14.)라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고 전해준다. 버스 기사님들도 오전에 출근할 때는 친절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데 하루종일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오후에는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하긴 나도 잠깐 운전을 해도 공격적인 오토바이부터 킥보드에 옆에만 지나가도 움찍 하게 만드는 대형 트럭까지 생각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버스 기사님들도 하루종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소수이지만 성격 참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버스 기사도 존재하며 기분 나쁜 기억이 있다.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오전의 친절함이 오후에 사라진다."
분명 상쾌한 아침 출근하여 오전부터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하루가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다. 가끔 고장 난 라디오 같은 인간을 만나 똑같은 주장을 반복해서 듣는 일도 있고,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귀에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라는 인간도 만나게 된다. 결국 나의 친절의 총에너지를 소진하는 순간 친절함을 쥐어짜보지만 아쉽게 사무적인 태도로 변한다. 체력이 방전되면 나의 친절은 고갈되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최대한 짧게 말한다.
모두가 ‘노’ 할 때 ‘예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109
카멜레온처럼 자기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승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회인에게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상황에 맞게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지요.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만 호구는 싫어》(나이토 요시히토, 김지윤, 포레스트북스, 2018.12.17.)
나는 갈대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상황에 유연한 사람이 아니라 팔랑귀 중의 하나였구나 반성한다. 나는 선비와 같이 꼿꼿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뻣뻣한 사람이라 태도를 변화하지 못하는구나 싶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능글능글한 사람이 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대하는 사람들의 친절의 에너지가 바닥나기 전에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모두가 친절의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넉넉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가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친절을 받고 싶으면 먼저 친절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