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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Oct 21. 2024

비처럼 걱정도 내린다

회피 심리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비가 내리길 바라는 때가 있다.


"오늘 시합을 하면 반드시 질 게 분명해."

야구를 보다 보면 응원하는 팀이 오늘 시합을 치르면 반드시 질 것 같은 상황이 있다. 투수진의 소모가 심해 투수가 없다거나 선수들의 부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드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차라리 비가 와서 시합이 연기되길 바라게 된다. 이런 날 비는 전혀 야속하지 않다. 물론 비가 그치고 시합을 해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월요일 출근길처럼 무턱대고 뒤로 미루고 싶은 심정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마다 비가 와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한다.


"군대에서 가끔 비는 단비이다."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하지 않지만 군대 시절은 예외가 아닐까 싶다. 땡볕에서 작업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비가 와서 취소되는 경우는 정말 반가운 비였다. 비가 와도 우의를 입고 작업을 했지만 그래도 외부작업보다는 실내 정비 위주의 작업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전역을 두 달 남긴 여름 유격이 군 생활의 최대 고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3개의 조로 나뉜 우리 중대 유격 마지막 C조였다. 앞에 먼저 유격 훈련을 다녀온 A, B조 동료들이 죽었다 돌아온 사람들처럼 몸살을 앓고 돌아올 때마다 왜 나는 두 달 먼저 입대하지 않아 이런 시련을 받고 제대해야 하나 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나의 유격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 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훈련장에 물구덩이가 생기더니 나의 유격 훈련은 이틀 만에 멈추고 총 대신 삽을 들고 며칠간 배수로를 정비했다.


"내리는 눈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눈이 내리면 강아지처럼 밖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가끔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내리는 눈이 좋았다. 하지만 군대에 가니 내리는 눈이 야속했다. 밤새 눈을 치우는 일도 있었다. 눈을 다 치우고 뒤 돌아보면 다시 쌓이는 눈이 야속했다. 겨우 부대의 눈을 치우고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인근 도로가 모두 눈에 통제되었다고 지원 요청이 온다. 그때는 왜 제설차도 없고 제설장비도 허접해서 사람이 삽을 들고 눈을 밀고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다 인력이 소중했던 시기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눈길에 넘어지는 일이 생기고 더 이상 눈이 오면 기쁘지 않았다. 막히는 출퇴근 길도 싫었고, 부모님의 이동도 걱정이 되었다. 이제 동심이 사라진 나이가 되어 버렸다.


동환이의 썬데이 서울 p.109

세상은 누구에게도, 어느 나이에도 잔인한 곳이다. 잘 살고 못 사는 게 노력과 상관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노력한다고 잘 산다는 보장도 없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동환이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 동환이에게는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많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누가 잘 살고 못 살아야 하는지 판단할 능력과 권리는 사실 누구에게도 없다. 우연이 마구 섞인 혼란 속에서 우린 의미와 규칙을 찾아 헤맨다. 그런 와중에도 집단적인 착각 속에서 세상은 잘도 굴러간다. 아니, 잘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잘 굴러가야 한다는 생각도 어쩌면 과욕이다. 저마다 원하는 선택을 할 뿐이니까.

《금호동의 달》(김정식, 이유출판, 2024.07.16.)

https://blog.naver.com/mvpsoon/223625928006


살면서 피하고 싶은 날이 존재한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발표 일도, 수능 전날도, 군입대 전날도 그랬던 기억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날이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 막상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걱정에 스스로 위축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피하고 싶은 날이 막상 지나면 또 즐거운 일이 가득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날도 있었지만 내일 아침부터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날도 있었다.

"막상 걱정도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 무턱대고 회피하지 말고 덤덤하게 먼저 행동하는 게 어떨까 스스로에게 조언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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