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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 흔들리는 나

by Jeader

1장 저성장 시대, 가격을 웃도는 가치를 전달하다 p.14

실제로 '가성비'를 뜻한 일본어인 '코스파'라는 단어는 1990년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보다 30년 일찍부터 가성비라는 마인드셋이 무장된 일본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오랫동안 코스파를 의식하며 살아온 일본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코스파를 넘어 시간을 중시하는 '타이파(가격 대비 시간, Time-Performance)', 공간을 중시하는 '스페파(가격 대비 공간, Space-Performance)'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가격뿐만 아니라 다양한 축에서 성능을 따지며 소비자들은 점점 더 영리하게 행동한다. 이러한 용어들의 핵심은 '퍼포먼스(performance, 성능)'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즉 가격에 있어, 시간에 있어, 공간에 있어 자신이 사용한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정희선, 원앤원북스, 2023.11.16.)


태어나서 뉴스라는 것을 보기 시작한 이후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좋을 것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매년 회사는 위기라고 말했고, 내년 시장 전망은 항상 어두운 예측뿐이었다. 사양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장의 변화로 소외받기 시작하면 보통 직원들이 줄어들고 급여의 동결이 당연한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나의 직장은 사양산업인가 보다. 사람들은 계속 나가기만 하고 새로 채용되지 않고 있으며 급여는 계속 동결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최저급여 아래에 있는 직원들이 발생하여서 소폭으로 가끔 인상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어제 지난 10년을 지나치며 얼굴을 본 직원 분의 퇴사 소식을 듣고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 점점 나의 직장에서 떠나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분은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하는데 옮기는 곳의 조건이 엄청나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역으로 나의 직장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상되는 상황대로 매년 급여의 동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예산의 절감도 수반되고 있다. 일명 마른 수건에 물 짜기도 계속하다 보면 흥건한 땀으로 나오는 결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 어떻게든 자기가 하라고 해서 결과가 나오면 되는 게 조직의 생리가 아니었던가 싶다가도 가끔은 어떻게 조직이 돌아가나 싶다가도 그냥 목적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는 것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조직에 충실하다는 것이 조직이 잘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사내정치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이 더욱 깊어진다.


이제 가벼워진 예산으로 가치가 높은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은 사실 물가를 계속 누르는 디플레이션이 9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으니 과시를 위한 명품이 아니라면 정말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가격 대비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아 그럼 "나는 급여 대비 높은 성과를 보이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무슨 답을 해야 할까 싶다. 과거의 성실함보다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기에 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 내에 과거와 같은 가치를 가진 베이비부머 세대와 자신의 가치가 더욱 중요한 Z세대의 사이에 낀 X세대는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이왕이면 흔들려도 흔들리는 꽃처럼 샴푸향이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미루고 다시 밥벌이에 집중한다.


난 언제까지 흔들리며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흔들리면서 살까? 사는 동안 계속된 바람과 풍랑을 견디면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석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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