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사연이 있다

by Jeader

갈수록 커지는 세대 간 갈등 p.133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일상에서 접촉을 늘리면 편견이 줄어들고 갈등이 약화된다는 가정이다. 《혐오 없는 삶》을 지은 독일 저널리스트 바스티안 베르브너Bestian Berbner도 '접촉'을 강조한다. 그는 "어떤 사람을 진짜 알게 되면 더는 그를 증오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난민이나 동성애자 또는 정치적 반대 진영을 혐오하다가 막상 그 사람과 이웃이 되고 접촉이 늘어나면 혐오 감정이 누그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계의 언어》(문요한, 더퀘스트, 2023.12.15.)


나의 직장은 다음 주에 있을 직원 워크숍으로 다들 웅성웅성이다. 10여 년 전 새로운 주인이 오고 직원들의 단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실시하였다가 현장에서 심정지가 와서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던 체육대회를 마지막으로 오랜만의 이벤트이다. 그때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부서장이 심정지가 온 대표 부인에게 불려 가서 엄청나게 질책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다시는 이런 직원 행사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조직도 이런 단합대회를 한다고 단합되지 않는다는 시대라는 것을 알 것이다.


회사의 주인이 북한의 공산당 정권처럼 세습되어 현재의 주인은 젊으니 아버지처럼 행사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직원들의 불만이 가득한 불신지옥의 우리 직장에서 1박 2일의 워크숍은 반갑지 않다. 서로 회사에서 얼굴 보는 것도 달갑지 않아 묵언수행을 하는 중인데, 1박 2일이라니 한겨울에 다시 예비군 훈련에 끌려가는 악몽을 누가 계획했는지 참았던 욕이 튀어나온다.


예전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뭐 사실 매번 대선에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여튼 그 사람이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은 말이 있었다.

"나라가 가난한 게 아닙니다.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조직은 항상 돈이 없다고 일하는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돈이 없다면서 대표는 쓸데없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MOU를 체결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닌다.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해외출장이었다는 말은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유사하다.


다시 워크숍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조직은 청년 시절 여행 중에 돈을 아끼려고 잠시 짐을 보관하고 몸을 눕혔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 묶는다고 한다. 예전 해외여행 중 캐리어 도둑맞을까 봐 침대 다리에 캐리어를 묶어두고 캐리어에 기대 같은 방의 사람들과 어색하게 잠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번 행사는 그런 여행의 기억이 행복하고 좋았는지 아니면 나빠진 살림살이 때문인지 숙소는 도미토리에 넣고 강당을 빌려 정신 교육을 진행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다고 예고되었다. 이미 정신 놓기 직전인데 그만 괴롭히시면 안 될까 싶지만 가렴주구는 조선시대부터 우리 조직까지 대대손손 이어진다.


모래알보다 더 뭉쳐지기 쉽지 않은 조직을 만들어 놓은 것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1박 2일 워크숍을 하면, 해병대 캠프에 가면, 등산을 같이 하면 애사심이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부풀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문현답을 기대하는 것은 영화 《어벤져서》의 타노스와 같은 빌런의 자기주장이 아닌가 싶다. 정말 조직의 절반을 날리고 싶은지 의문이다. 이왕 직원들과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한다면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부터 하는 건 어떨까 싶다. 듣다 보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겠지만 서로를 알아가려는 접촉을 늘리는 것은 조직을 위한 일이다.


접촉이 원하지 않는 접촉이라면 그것은 부작용을 발생한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 같은 말도 안 되는 괘변이 통하는 시대라지만 같이 잘 사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괴상한 신념을 강요하며 살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 물고기 같이 생긴 못생긴 부하들은 남겠구나...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평가가 어떻든 그 사람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가끔 진상을 부리거나 일을 망쳐도 수습해 주고 씩씩거리기는 하지만 욕까지는 안 하려 한다. 이해는 되지만 그들이 벌린 일이 용서가 되거나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사람의 상황을 알면 증오는 하지 않는다. 알고도 증오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자주 보면 정든다.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정주고 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