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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Nov 17. 2023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회사는 요지경

예전 호프집매니저로 1년간 일한 적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월급쟁이 점장이기에, 전체적인 운영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힘들게 일하고 나서 친한 직장동료와 한잔 기울이는 직장인,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는 회식으로 인해, 나에게 가게문을 빨리 닫아달라고 말하는 직장인, 어쩌다 보니 이 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젊은 친구들, 낮부터 가볍게 술을 마시는 할머니들등,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제일 기억 남는 사람은 피자빌런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 상사 1명과 남자 부하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알바들과 내가 피자빌런이라고 지은 이유는 이 사람들은 어디서 얼큰하게 취하고 와서 우리 가게로 꼭 2차를 온 뒤 피자만 먹었다. 다른 메뉴는 시키지도 않고 오직. 오직 피자만을 시켰다. 늘 만취하고 아랫직원들을 괴롭히고 부하가 아닌, 노예처럼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아랫직원들이 저리 쩔쩔매는 것일까.


어느 날은 피자 재료가 다 떨어져서 피자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아랫직원들이 나에게 거의 빌듯이 부탁했다. 피자 비슷한 거라도 제발 부탁드린다고,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들은 정말 간절했다. 기우제를 지내는 부족같이 간절하게 빌었다. 어영부영 남은 재료들로 이상한 피자를 만들어서 냈고, 뭐 결국 잘 넘어갔다.


그냥 이런 바보 같고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참 지금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런 후에 사회복지사가 된 후로는, 이상하지 않게 여겼다. 세상이 미쳐있는지, 내가 미친 건지, 내가 다닌 회사가 미친 건지, 다들 그런 걸 원했다. 의전과 아부, 그리고 각종 개인일까지, 결국 나도 그렇게 되어있었다. 센터장 대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불쌍하게 여겼던 피자빌런 부하직원이랑 난 다를 게 없었다.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광대짓을 하고, 아부를 떨었다. 저기 북쪽 위대한 수령님을 찬양하듯이, 센터장이 낸 병신 같은 아이디어에 극찬을 보냈다. 이런 병신짓이 지겨웠다. 내 능력을 통해서 성공을 이루고, 내 자리를 일구고 싶었다. 아부나 아첨, 광대짓을 안 하고 온전히 내 능력을 이용해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결국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다녔다.


지금 새로운 직장은 과연 달라졌을까. 슬프지만 똑같다. 사실 보태자면 지금이 더 심하다. 지금은 주도적으로 하는 일 없이, 차 운전하기, 대리기사 부르기, 술 사 오기, 술 따르기 등 온갖 의전이란 의전은 다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슬프거나 괴롭냐고?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해를 해버렸다. 현재 다니는 곳은 박사학위까지 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흔히 말해서 공부할 만큼 했고 능력도 있으신 분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열심히 의전을 한다. 기분에 맞춰 술을 같이 마시고, 주량이 넘치도록 술을 마신다. 오직 대표 한마디에 충성하고 실행한다.


나보다 훨씬 배우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뭐라고 안 하고 살 수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강력한 파워를 가진 한 사람으로 인해 몇십 명의 목줄이 달려있다. 그냥 세상이 그렇다. 내가 건방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납득하게 되었다. 참 웃긴 일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박민규의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정직원이 못될 위기가 온 남자 주인공은 인사권을 가진 남색가 부장에게 정직원을 볼모로 유사성행위를 강요받는다. 그러고 주인공은 결국 유사성행위를 하고 혼자 자책한다. 그리고 나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너구리가 위로해준다. 그 당시에는 고등학생이라 이 내용이 와닿지 않았다. 물론 내용 자체가 극단적이기도 했지만, 정직원이 뭐 대단한 거라고 저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지독하다. 지금 지구 어디선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너구리는 주인공을 위로하고

주인공은 너구리에게 감사한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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