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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Nov 28. 2023

세후 190 인간 - 사직서

사회라는 전쟁터

군생활을 할 시기에,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비상상황이 걸리고 활동복도 입지 못하고 전투복을 입고 생활하는 시절이 있었다. 다들 농담으로 전쟁이 난다느니, 우리는 전역을 못하느니 이런 이야기를 농담조로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반 농담이었지만, 행여나 정말 전쟁이라는 것에 내가 휩쓸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손톱을 자르고 유서를 작성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적은 있었지만, 나에게 유서를 작성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그리하여 유서를 적고 손톱을 잘라서 서류봉투에 고이 넣었다. 그 후 알 수 없는 체념이 몰려왔다. 나를 감싸던 불안감과 그 모든 것들이 부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상황자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전역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유서를 쓴 기억만은 강렬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모든 것에 대해 초월하는 느낌이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사실 이 기억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문뜩 떠올랐다. 이 기억이. 그리고는 사회는 전쟁터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군인이 아니고 사회라는 전쟁터에 있다. 그리고는 유서처럼 사직서를 작성했다. 왠지 그때의 기분이 들었던 걸까. 갑자기 사직서를 미리 쓰고 지긋히 바라보았다. 이건 일종의 유서가 아닐까.


물론 전쟁과는 다르겠지만, 사직서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목숨만을 부지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백기를 흔들며 투항하는 포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전쟁을 반대하여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평화주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로와 평화주의자 그중에 난 무엇일까.


포로던, 평화주의자던, 결론은 같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지 못할망정. 불행을 피하는데 급급하다.


회피형 인간의 최후라는 것은 보통 이렇다. 


하루종일 사직서만 만지작 거리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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