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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Sep 04. 2024

아버지

그리고 나

오랜만에 찾은 부모님 집. 어머니의 휴대폰을 교체해 드리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집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색함이 감도는 식탁 위로 아버지의 낯선 모습이 비쳤다.


"일은 딱딱하게 할 필요 없다. 빨리빨리 대충 넘겨야 한다."

공무원 시절, 늘 꼼꼼하고 깐깐하게 일하시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가 조금만 눈감고 살았으면 더 잘 살았을 거라고 푸념하셨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고 청렴하게 살아오신 모습은 내게 큰 귀감이 되었다.


하지만 퇴직 후 일반 회사에 다니시면서 아버지는 변하셨다. 예전의 강직함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에 대한 냉소와 체념만이 남은 듯했다. "다 똑같이 썩었어. 누가 되든 우리 삶에 아무 영향 없다." 아버지의 염세적인 말들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버지의 변화는 내게 혼란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아버지처럼 꽉 막힌 삶을 살아왔다. 열심히, 정직하게, 솔직하게 살면 뭐든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의 열정과 용기는 오히려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고, 나는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차라리 나태와 교만이 문제였다면, 삶의 태도를 바꾸면 그만이었을 텐데. 하지만 열정과 용기가 문제라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당당하게, 떳떳하게.

아버지는 변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가치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은 냉혹하고 때로는 부조리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넘어지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아버지처럼,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며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거대한 퍼즐 앞에 선다. 아직은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춰나가듯,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완성된 퍼즐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삶의 굴곡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나의 신념과 가치를 발견하며,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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