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은 Jean Aug 16. 2018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권태기는 오랜 연애의 간이역일까, 아니면 종착역일까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 나도 그런 네가 서운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어디서부턴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지만 끝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날 괴롭혔다. 이 사람과 함께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내가 꼽았던 그 우선순위들이, 이젠 점차 하나둘씩 무너지고 나 또한 그 사실에 무뎌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참 열정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느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치 익숙함이, 그리고 그에서 나오는 소중함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린 항상 싸웠다. 싸우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계속 싸우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그에게 기대했지만 얻지 못한 점들에 대해 불만이었고, 그는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보다 표현이 적은 것도, 말하는 것이 서투른 것도, 이야기를 할 때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 것도.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나는 이전과 달라진 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니까 그만 좀 징징대

그리고 그 싸움의 끝은 서로를 향해 겨냥하고 있던 화살의 시위를 당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순간 그가 내뱉은 그 징징거린다는 단어가, 그 가시 돋은 삐죽한 말이 훅- 하며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에게만큼은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던 만큼, 그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그를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 모든 상처들은 내게 도달하기 까지의 시간문제였을 뿐이였단 사실과 함께 우리 사이의 신뢰는 존재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스라졌다.

그와의 언쟁 끝에 얼얼해진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우리에게 진작 물었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 걸까?


그 불행의 근원에는 '나는 내 자신이 싫다.'라는 지하 392823749층에서나 올라올법한 생각들이 있었다. 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며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싫었다. 비꼬거나,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하는 내 모습.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가진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자꾸만 튀어나오는 내 나쁜 모습들을 지워내버리고만 싶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포기하면 참 쉽다. 포기란 마음을 접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접는다는 건, 이제 모든 것이 쉬워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쉬웠던 만큼 나도 그에게 쉬워지려 노력하자 우린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평소처럼 하던 공격적인 말도,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주는 상처들도, 의미 없는 주도권 싸움 같은 것도 다 뒤로 한채 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젠 그렇게 넘어가도 될 것만 같다는 무언의 허락을 내 마음에게 받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에 대한 내 사랑을 포기했다. 우습게도 헤어지자고 먼저 말한 쪽은 나였다. 난 항상 내가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헤어짐의 선택권이란 건 사랑의 크기로 가늠할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이 사람 없이도 나는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시간이 흘러 누군갈 만나더라도 더 설레고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어’란 조금은 오만한, 그래도 이번만큼은 오만해져도 괜찮을 거란 생각.


내가 이러한 이유들로, 어쩌면 변명들로 선택한 이별이란 답에 후회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누가 봐도 명백한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노력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어쩌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저 덜 사랑한 것이 아닐까. 남들은 다 극복한다는데 우리만 약해 빠졌던 건 아닌가... 같은 생각들이 한 번씩 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휘저어 놓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난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권태기는 간이역이 아닌 종착역이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의 희망도, 여지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럴 여력조차 남지 않았었다. 결국 권태기란 불가피한 존재는 관계의 본질에서 오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관계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 했음에도 되지 않으면 놓아줘야 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권태기가 종착역이라고 판단된 순간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려야만 했다.


나 또한 '권태기에도 불구하고 슬기롭게 극복하는 누군가'라는 아름다운 전래동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변했다. 그리고 이 세상엔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나와는 이제 다른 길을 걷게 된 그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정말 마음 같아선 사람은 변하고 사랑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고 사랑만은 변해버리니 말이다.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이전 07화 다시 사랑하기엔 난 너무 망가진 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