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과학철학적 함의

버리지 못해도 되살리지 못해도, 과학이 아니다

by 임지성의 생각



안될과학 랩미팅에서 소개된 카이스트 신의철 교수님의 2025년 노밸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업적 이야기[ 1부 링크 | 2부 링크 ]를 청취하며 든 생각이다.


아무 지식도 사장시키지 못하는 학문도 문제적이지만,

사장시킨 것을 도무지 되살려내지 못하는 학문도 성숙한 학문은 아니다.


포퍼는 반례가 등장할 때마다 과학 연구자가 논리적 엄밀성과 창의적 직관적 통찰력을 발휘해 기존 가설의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상을 과학철학계에서는 '반증주의'라고 하는데, 포퍼는 이를 통해 과학철학에서 뜨거운 주제인 '귀납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 과학철학 논의에서 입지전적인 무수한 인물들 중, 실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이들마저도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의 입지전적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포퍼와 그의 '반증주의'의 명성은 과학계에서도 그러한 입지를 굳혔다.


이 반증주의는 아들러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주의 운동("당대의" 그리고 "포퍼 주변의" 마르크스주의)처럼 거의 전능한 명력으로 모든 현상을 포섭하는 학문 계열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성패 조건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검증에 부치는 계열의 과학을 대비하며 발달시킨 포퍼 개인의 지적 여정과 긴밀하다.


한편 포퍼의 제자였던 라카토스는 포퍼의 과학적 합리성에 매료되었으면서도,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졸속으로 실패를 따지는 것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자세로 긴 시계열 속에서 연구 프로그램의 성과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나는 포퍼와 라카토스의 과학철학 관점에 관하여 서적 이외의 수단으로는 한양대 이상욱 교수님의 해설에 의존한다. 이교수님의 EBS e클래스의 강의한양대 K-MOOC 강의 생소할 수도 있는 학철학 분야의 담론을 노베이스 상태로 수강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명하게 소개해 준다.

그 외의 과학철학에 대한 내 견해는 대체로 학부 시절에 읽었던 여러 철학 문헌(주로 현상학, 철학적 해석학, 비트겐슈타인 전/후기 철학, 신약 학자 N. T. 라이트의 비판적 실재론 전유 방식,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에 관한 입문서, 번역서, 에세이, 논문 등)과 T.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사미르 오샤카의 『과학철학』, 이기홍의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이상욱 외 3인의 『과학으로 생각한다』 등을 통해 형성되었다.


나는 이번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우여곡절이, 연구 프로그램의 성과를 계열사적으로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라카토스 주장의 적중 사례라고 생각한다.


① 사카구치 박사(외 2인)의 연구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연구 패러다임이 사실은 이미 80년대에도 근소하게 다른 초점과 방향으로 연구되고 있었다는 점,


② 그러나 그 미세한 초점 차이를 계기로 해당 계열의 연구 프로그램이 일시적으로나마 완전 사장된 점,


③ 또 그 탓에 1992~2000년도에 작성된 교과서로 기초를 닦은 학생들은 '95년도에 발표된 사카구치의 연구 결과("T-Reg"과 자기 면역 작용 여부에 대한 강한 상관관계를 실험 관찰로 입증)를 간과하게 되었다는 점,


하지만 사카구치는 사장된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고, 뒤늦게라도(2003년~) 그의 성과가 인정되어 면역학 패러다임이 다시 부활하게 된 점,


⑤ 심지어 이제 그의 연구가 면역학 분야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부상했으며, 결국 사카구치 외 2인이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이른 점


등을 생각했을 때 그렇다.


무수한 성과와 실용성 덕에 "과학 연구"는 현대인의 세계관 속에서 매우 큰 인식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 과학 연구는 언제든지 한계를 직면하고 멈칫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주저앉기도 한다.


게다가 그 한계의 층위마저 다양하다. 실험 및 관측 장비의 한계, 이론 언어 혹은 언어 자체의 한계, 경험과 실재의 원초적 단절, 인력이나 예산의 부족, 권위의 부족 등등 (...) 이 똑똑한 사람들의 활동 역시 방법론적 층위, 사변적 층위, 현실적 층위의 한계 앞에서는 인간적이기까지 할 뿐이다.


이렇게 한계 앞에서 취약한 '인간적 활동(과학)'이 여전히 가치로운 이유는, (포퍼의 인식처럼) 과학 연구가 '한계를 다루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즉 "성과를 얼마나 잘 낼 수 있느냐" 만큼이나 이 '방법(활동)'의 훌륭한 점은, "틀린 생각과 잘못된 방법을 처리할 때 보이는 성숙함" 측면이다.

많은 과학적 진보의 사례가 기존 성과를 극복해 나가는 여정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계 앞에서 어떤 편견이나 부족한 모형을 사장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라카토스 '연구 프로그램' 이론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사카구치와 면역학 이야기'는 이 '과학적인 태도'에 대한 일종의 추신과도 같다.


즉 사장시키지 못하는 도그마가 있어도 과학적이지 못하지만,

한번 사장시켰다고 하여 그것을 전혀 되살려내지 못하는 것 역시 과학적인 태도는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이미 사장된 이론들의 빛에 의존할 때가 많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 역학의 모든 것을 희석해버린 것은 아니며, 동일한 수준의 중력계 안에서는 뉴턴 역학으로도 충분히(거의 전적으로) 근사적으로 실용적인 예측력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어쩌면 비전문가들끼리의 심심풀이 수준에서라도 종종 회자되는 'EPR 역설(숨은 변수 이론)' 역시 영원히 조리돌림 당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사카구치의 사례처럼 철 지난 방향 속 일부 통찰이 나중에라도 한계 상황을 돌파하는 데 빛을 던져줄 수 있으니 말이다.**

* (내가 철학을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양자역학 분야에서 새롭게 정의된 '진공' 개념과 뉴턴 역학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해 20세기에 와서는 확실히 거부된 '에테르 가설'이 조금 닮아있다고 느낀다.

** 근래에는 리처드 도킨스가 종교 비판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분자생물학의 패러다임도 환원주의적 결정론 함의를 넘어서는 "시스템 생물학"이라는 새 관점과의 논의를 직면했다.

이 분야의 대가인 데니스 노블은 다윈의 "자연 선택" 만큼이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생물학적으로 유효할 수 있음을 주장하여 흥미를 돋운다.


내가 요즘 관심 두고 있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테제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① '헤겔 철학을 재해석하는 방식'이나 ② '(당대의) 고전 경제학(리카도 등의 '노동 가치론')을 비판하는 방식'* 등에 담긴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눈부시다.

* 경제학도들은 마르크스 경제학도 고전적인 이론이고 사장된 체계라며 지적할 수도 있다. 또 마르크스를 비롯한 고전 경제학의 도태 사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공급이 수요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의 실패', '금태환 시스템의 붕괴', '세계 대공황 이후의 통화 및 재정 정책' 등등 ....

(물론 이렇게 나열하는 나의 사유 역시 일종의 '허수아비 사냥'에 빠져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경제 현상 묘사는 (적어도 내 눈에는) 이런 식으로 나열되는 여러 문제들 중, ('유토피아적 관점', '혁명의 필연성', '금태환 붕괴라는 새 변수' 등을 제외하면) 현재 관측되는 매우 다양한 정치경제적 현상들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설명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과학적 방법은 예측력, 설명력, 실용성, 수익성 등 다양한 면에서 인류에게 선물같은 무엇이지만,

특히 어떤 편견에라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리고 이 방법 특유의 이 유연성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이미 과학 사회가 어리석은 시도로 여겨 폐기해버린 각종 편견들 중 일부에게마저

지혜롭게 재등판할 기회를 허락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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