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테 좋은 거 말고, 나한테 좋은 거 선택하기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전공 수업에 비교적 시큰둥했다면, 교양 수업으로 미국학(SF영화) 특강이나 영화의 이해 등, 영화 관련 수업은 참 꾸준히도 찾아 들었다. 영화 유투버들을 보면서, 정작 나는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영화 관련 콘텐츠를 제대로 생성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남들보다 충분히 덕스럽지 않다는 위축감도 든 적도 있지만, 누구랑 비교를 하는건가.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 그걸로 된거다.
그렇게 하나 둘 축적된 영화 기록은 어쩌다 한 번 심신의 안정이나 삶의 답을 찾고 싶을 때 하나씩 꺼내볼 수 있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 요즘같이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갈 때 문득 떠오른 2개의 영화를 꺼내보았다.
LIFE 잡지사에서 16년이라는 기간을 근무한 월터가 구조조정 위기 앞에서 해고를 모면하기 위해 모험에 뛰어드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회사 밖에서 감행한 월터의 모험은 그를 이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릴 적, 그는 스케이트를 참 잘타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1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직업을 구해야했던 어린 월터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며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그 스케이트 실력으로 짝사랑하는 여자의 아들내미 마음도 사로잡고, 아이슬란드에서도 스케이크보드를 타고 빠르게 화산까지 도달할 수도 있었다. 인생은 참 뭐든 길게 보고, 지금 당장은 의미 없어보이는 순간들도 나중에 마법처럼 서로 맞닿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영화였다.
기자를 꿈꾸는 앤디가 '어쩌다' 합격해버린 패션 잡지사에서 악명 높은 편집장의 비서로 1년이 좀 안되는 기간동안 일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앤디가 애초에 패션 잡지사의 일자리를 수락한 이유는 나중에 자기가 일하고 싶은 회사에 들어갈 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편집장은 출판계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 일한 경력을 써먹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다.
앤디가 매일 같이 듣는 말이 있다.
모든 여자애들이 니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있어
그 말을 계속 듣다보니 '내가 이 자리를 원하나?'라는 의문마저도 희미해져간다. '모두가 원하는 일자리'라는 말은 꽤나 유혹적이다. 자기가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던 일자리에서 잘하기 위해 그녀는 본연의 모습을 잃어간다. 주변 친구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고 불편해하지만, 그녀는 '내겐 선택이 없었어!'라는 말로 일관한다. 하지만 정말 그녀에게 선택이 없었을까? 일 때문에 남자친구의 생일을 잊고, 아버지와의 저녁 약속 중에도 업무 전화를 받고, 사수가 손꼽아 기다리던 파리 패션위크를 그녀 대신 참가하는 등, 앤디는 점차 삶의 일부를 넘어 고유의 인간성까지도 잃어간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충성되고 오랜 직원인 나이젤을 배신하는 편집장을 보며 앤디는 문득 깨닫는다.
앤디:
근데 이게 제가 원하는 게 아니면요? 편집장님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요?
편집장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고 싶어해. 모두가 우리처럼 되고 싶어한다고.
언제 봐도 새로운 메세지와 명언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말 그대로 벗어던지는 아주 상징적인 영화다. 남들에게 좋아보인다고 해서 그걸 쫓아야할 이유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나에게 좋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