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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Sep 24. 2023

내가 어떻게 입든 무슨 상관이람

전 국민 공통 스탠더드 유니폼이라도 있는 겁니까

| 내 맘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자유


발리에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옷을 마음껏 입고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몸에 짝 달라붙는 요가복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해도 괜찮았고, 바닷가 근처에서는 몸매가 다 드러나는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요가원에서 만난 언니도 이 부분에 크게 동의했다.


얼마나 좋아요! 가슴 꼭지가 보여도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

흘끗흘끗 바라보는 시선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옷을 마음대로 편하게 입고 다니니 나도 덩달아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주변의 눈치를 보며 옷을 입고 다녔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점차 '사실은 나도 입고 싶었지만 남의 눈 신경 쓰느라 입지 못했던' 비키니나 탱크톱 같은 시원한(?) 옷들을 신나게 찾아 입기 시작했다. 단돈 3천 원짜리 탱크톱과 단돈 5천 원짜리 반바지만으로도 내 마음에 드는 코디를 완성해 냈다. 피부의 노출을 늘려 온몸에 햇빛을 닿게 할 수 있는 그 감각이 참 좋았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의 감각이었다. 내 몸에게는 야외에서 햇빛을 쬘 권리가 있다!




| 비키니를 입지 못하는 사람들


길리에 머물던 당시, 하루는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인 친구 쥴스(Jules)와 같이 앞바다로 거북이를 보러 갔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서 입수하는데, 물속에서 비키니들 사이로 시커먼 옷에 뒤덮인 다리 4개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국인 커플분들이었다. 시커먼 긴팔 래시가드에 챙모자까지 끼고 물 위에 둥둥 떠있는데, 물놀이를 하러 온 것인지 바닷물에 몸만 담그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쥴스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래시가드 입은 사람들은 거의 99% 한국인들이더라. 이젠 나도 바로 알아볼 수 있어!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는 물놀이 = 래시가드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 이유는 살을 태우고 싶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실내 워터파크에서까지 다들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몸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것 같다. 주변 사람 모두가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곳에서 당당히 비키니를 입고 맨살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내 몸에 아무리 자신 있다고 한들 보통 이상의 용기와 자신감과 마이웨이가 필요하리라.


몸 상태가 어떻든 그냥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서로 아무 신경 안 쓰면 그만일 텐데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각박한 기준을 들이대는 분위기가 우리를 더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두려워하는 심리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워낙 인터넷도 빠르고 소문도 빠르고, 땅덩어리도 좁아서 금방 신원을 찾을 수 있다 보니 프라이버시는 전무하고 어디를 가나 다양성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좁은 사회'라는 말이 딱 맞다.




| 남의 시선에 민감한 사회, No Privacy


대학교를 다니던 당시, '기숙사 건물에서 수학과 누구랑 통계학과 누구가 거시기뽕짝을 했다더라'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삽시간에 전교에 그것을 멀리서부터 촬영한 영상부터 시작해서 실명 공개에 뒤이어 후일담까지 쫙 퍼졌다. 심지어 당시 듣고 있던 '윤리와 사상'이라는 교양 과목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토론까지 진행될 정도로 해당 사건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니 소문이 빠르게 퍼질 수 있다 쳐도, '어느 회사에서 누가 결혼을 앞두고 바람을 폈다더라'와 같은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사적인 일도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모두의 귀에 들어간다. 매우 개인적인 사건들이 퍼지는 속도와 규모를 보면, 거의 전 국민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수준에 가깝다. 그런 소문을 듣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조심해야지,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숨죽여 살아야지'라는 공포 섞인 인식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에 대한 입방아가 많다는 건 결국, 나 또한 그 입방아에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거니까.


남의 시선에 그토록 민감한 문화가 형성되다 보니, 다소 획일화된 패션 또한 빠르게 유행하고 또 저문다. 중고등학생 때는 노스페이스와 나이키가 학생들의 교복이었는데, 지금은 폴로와 꼼데가르송과 아페세가 젊은 직장인들의 교복이 되어버린 사회가 참 이상하게 느껴진다. 마치 패션코드에 정답이라도 정해져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 속에서 내 취향과 주관을 내세워 개인의 색깔을 가진다는 것은 보통 이상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 타인의 몸을 평가하는 말


남들의 외모를 판단하는 잣대는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화살이 된다. '아우, 저 사람 뱃살 나왔는데 비키니 입었네’라고 얼굴을 찌푸린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절대 뱃살이 나온 상태로 비키니 입는 걸 허용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저 여자 몸매 별로 안 예쁜데도 크롭탑 입었네'라고 평가하는 건 '나도 몸매가 예뻐지기 전까지는 크롭탑을 입을 수 없어'라는 말과 같다.


남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해로운 이유는 그게 결국 서로에게 돌고 돌아와 사회 전체를 검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개인의 자유니까'라며 으쓱하고 넘기면 될 일들이 참 많은데,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이트한 기준들이 숨을 옥죄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제한하는 사회에서 모두의 스트레스 지수와 긴장감이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한창 복싱을 배울 때였다. 운동하러 가면 관장님 다음으로 복싱장에 가장 오래 머무는 고인물 회원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쪽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하는 말,


"그렇게 마른 몸매는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요." 

"...?" 


갑작스러운 인신공격에 벙 쪄서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게 아직도 그렇게 억울하게 계속 맴돈다. "어쩌라고요"라는 말이라도 할걸. 남의 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던 그 사람은 정말 무례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란다.


친구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창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평소보다 많이 살쪄있던 상태였다. 하루는 주말을 맞아 어머니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TV에 나온 과체중의 연예인을 보고 "어후~ 뚱뚱해! 저거 저거 뚱뚱한 사람들은 다~ 게으른 사람들이야. (친구 쪽을 휙 보시더니) 너도 나가서 운동 좀 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상처받았다고. 부모님에게까지도 신체에 대한 평가와 검열을 받는데, 이 친구가 과연 자기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


미국 여행 중 한 서점에서 어린이 동화책을 발견했는데 책 제목이 <Bodies are cool (몸은 멋져!)>였다. 아래와 같은 내용들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려서부터 사람들 생김새의 다양성을 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방향성에 딱 걸맞은 책이었다.




우리의 몸에 대한 인식은 외부로부터 형성된다. 미디어에 비치는 연예인들의 모습만 봐도 지금 내가 속해있는 사회가 숭배하는 신체상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완벽한 몸매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른 취향과 기준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람들은 아닌 것처럼, 개개인의 다양성에 더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


이제 몸은 단순히 건강과 미용에 관련된 것 그 이상으로, 사회적 계급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척도로서 기능하고 있다. 예전에 한 패션유투버가 한 말이 생각난다. 곧 로우웨이스트 바지들이 유행할 것 같은데, 로우웨이스트는 배가 다 드러나는 바지이기 때문에 복근이 있고 몸매가 좋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고. 이제는 물건으로 과시를 하기보다 몸매로 과시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말을 했다. 충분히 납득되는 말이었다. 몸매가 좋다는 건 곧 그만큼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끝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예쁜 몸매에 대한 기준도 계속해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러니 단순한 결론이지만서도, 그냥 내가 내 몸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면 그만이다. 내 발목과 무릎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의 옷을 입을 수 있는 몸매를 가꾸고, 내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피부색을 가지고. 내가 건강에 애정을 가지고 온전히 내 마음에 쏙 드는 내 몸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그 사람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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