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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May 09. 2023

퇴사 후, 무작정 발리로 향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러 떠났다

퇴사 후 의도치 않게 심도깊은 마음 공부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당장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어서였다. 상상만 했던 것과 다르게 퇴사 이후의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 내리락했다. 이 감정기복의 골짜기가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게 무서워서, 일단 환기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님이 해줬던 말 중 하나다.



큰 결정을 내리고 난 후에는 환기해주는 시간을 가지면 좋아요. 환기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혼자서 여행을 가는거에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거죠.


클리셰 같지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를 참 좋아하는 나로써는 머릿속에 발리 말고는 다른 나라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꾸따 해변 근처에서 서핑만 주구장창 하다가 와야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그래서 2023년 4월, 일주일간 요가만 배우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정한 이후로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비행기표 예약부터 숙소 예약, 여행자 보험 가입, 환전까지. 이게 다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다. 도착비자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도 그냥 도착해서 현장에서 받기로 했다. 여행을 탄탄하게 계획하고 동선을 짜고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목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늦은건 아닐까', '여행 다녀오면 그 다음은 뭐지', '실패하면 어쩌지' 등등. 내가 나를 못 믿고 있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매우 서러웠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곧, 나 혼자서 온전히 나라는 인간을 잘 책임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정에 가깝다. 내 욕구에 온전히 귀 기울여주는 연습을 하러가는 거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배가 고픈지, 어떤 걸 먹고 싶은지, 혼자 있고 싶은지 아니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지, 푹 자고 싶은지 밖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지 등등. 기존에 살던 익숙한 공간에만 있다보면 이런 것들이 매우 자연스럽고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일어나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모든 선택이 다 의식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혼자서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그 기본적인 것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에도 한동안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불안하고 온갖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장장 6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면서,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미리 다운받아온 에피소드를 10번은 돌려들었다. 내가 마음이 힘들 때 즐겨쓰는 방법이다. 에세이나 심리학 종류의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듣다보면, 마음을 꽤나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다. 나를 진정시키고 내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하자 오히려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인생은 평생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이끌어주는 과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걸 좀 잘 하는 방법을 배우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밤 도착한 발리는 두 번을 와봤는데도 여전히 낯설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별 별탈 없이 무사히,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는 것이 나에게는 절박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자마자부터 미리 예약해둔 택시 기사를 찾지 못해 결국 현금빵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지에서는 역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돌발상황들이 생기고는 하는데, 그런 상황들은 오히려 자신의 순발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고 또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늦은 밤 그렇게 익숙한듯 낯선 나라에서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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