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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Jul 11. 2023

아기 좋아, 근데 여기서 낳기는 싫어

애를 평생 안 낳겠다는 건 아니에요

| 아기는 무해한데, 환경이 유해해


아기를 정말 좋아한다. 귀여워서 막 부둥부둥하고 싶다. 회사 다니면서 돈 착착 모아서, 회사에서 나오는 지원금도 받고 회사 어린이집도 이용하고, 맞벌이 하면서 집도 사고 번듯한 가정을 꾸리는 그런 모양새를 오랫동안 당연하게 바라보고 살아왔다. 부모님이 가끔씩 ’ 우리도 손주 좀 보고 싶다 ‘는 마음을 내비치면 ’ 결혼한 언니가 낳겠지 ‘하고 무심한 척 넘기는데, 그런 말이 타격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가 애를 아예 안 낳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이들의 성장 환경이 지금의 내 현실보다 더 치열해 보여서 감히 엄두도 안 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시작은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다. 20대 초중반쯤 되었을 때 노키즈존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명목은 조용히 어른들끼리 식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아이들 차별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울 근교 보통의 한식집에서 떡하니 노 키즈존이라고 붙여놓은 것을 보고 3대가 함께 식당을 방문한 대가족이 무안함과 함께 발걸음을 돌리는 광경을, 나는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우는 어린아이를 향해 쌍욕을 날리는 성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사람은 승무원밖에 없었던 것도, 그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절박하게 ‘죄송합니다 ‘를 외치던 부모의 마음도, 그냥 너무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건 점주의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만, 옛날에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그런 식으로 만연했었다. 일부 무례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그 집단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차별받는 모습을 보면 서늘해진다. 타인의 실수나 무지를 관대하게 안아주기보다는 그냥 손절해 버리는 걸 선택할 정도로 우리에게 여유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노키즈존 이후에 '노중년존'이 등장하기도 했다. 20-30대의 파티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한 캠핑장의 점주가 40대 이상은 '분위기를 흐린다'며 입장 금지를 시켰던 사건이다. 비슷하게 '노교수존'도 있었다. 한 카페 겸 술집에서 해당 대학의 교수들이 여러 차례 소란을 피운 적이 있어, 교수들의 출입 자체를 금지시킨 것이다. 


다른 손님들의 편안한 이용을 위해 ㅇㅇ대학교 정규직 교수님들은 출입을 삼가주시 길 부탁드립니다. 혹시 입장하신다면 절대 스스로, 큰 소리로 신분을 밝히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의 차별들은 등장 즉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정작 노키즈존은 어느새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었다. 그런 식당이야 안 가면 그만이라고 해도, 노키즈존을 암묵적으로 용인한 사회 속에서 숨죽여 아이를 키워야 하는 그 환경이 사람을 더 옥죄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안 그래도 숨죽여 살아가던 와중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더더욱 조심하고 움츠러들어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니 용기가 안 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복잡 다난한 유인원 무리인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어떤 동물이든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이면 알아서 낳는다. 지금 이 환경은 누가 봐도 아이를 낳기 최악의 상황이니까 안 낳는 것뿐이다. 국가에 대한 이상한 복수심이나, 젊고 놀 거 많아서 안 낳는 게 아니다. 내 인생, 내 가족에 대한 문제인데 그렇게 단순한 표면적인 이유들만이 원인이었을 리 없다. 집 문제나 고용불안 문제가 물론 절대적으로 주를 이루는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청년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오랜 시간 쌓여온 문제처럼 보여서 어디서부터 손댈 수 있을지도 막막해 보인다. 아이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영어 유치원 가격이 월 200만 원을 육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주변 엄마들이 죄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있으면 나라도 초조하고 불안해서 보내고 싶을 것 같다. 출산 후 육아휴직에서 갓 돌아오셨던 대리님은 아이가 세 살이 되면 영어유치원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경쟁에 애초에 뛰어들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OECD 국가 중 아이들의 자살률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고 한다. 별로 충격적이거나 놀랍지는 않다. 어딘가 고장 났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맞벌이가 이제는 거의 필수인데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한지라 하교 후에도 학원을 몇 개를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 상징이 태권도 학원 되겠다. 정말 태권도를 배우게 하려는 목적보다는 앞뒤로 학원에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셔틀버스의 역할 및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탁아 시설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나의 아이에게 나의 학창 시절 같은 삶, 혹은 더 심한 삶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내 불안과 초조함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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