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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Jul 10. 2023

MZ 맞긴 한데, 진짜 맞나

예, 저도 MZ는 맞긴 한데요

| 솔직히 좋았습니다


MZ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후, 편한 점이 꽤 많이 생겼음을 고백한다. 나는 94년생, 만 28세다. 분류로 따지면 M세대인데 Z세대로 분류되고 싶어서 과장님들이랑은 미묘하게 선을 긋는 Mz(소문자) 세대정도 되겠다. 진짜 2000년대생 Z세대 입장에서는 왜 늙은이들이랑 같이 묶냐고 화낼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내 고등학생 조카랑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MZ세대다. 



한 번은 회사에서 상무님이 프린트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뽑고 나서 슬쩍 보니까 10장에 걸친 MZ에 대한 사설이었다. (제목이 너무 크게 적혀있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상무님은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과거 다른 부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직된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그 부서는 열린 마음에 깨어있으신 상무님의 노력 덕분에 정시퇴근 문화가 꽤나 잘 정착되어 있던 곳이었고, 그 외에도 직원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가끔 농담도 던지시고 유쾌하게 우리를 대하시던 상무님의 모습이 참 따뜻하고 좋게 느껴졌다. 그 프린트물을 들고 상무실까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멋진 어른이다, 바쁘실 텐데 이런 글도 틈틈이 찾아 읽으시네



당시 또래 주니어들이 부서로 대거 발령이 난 시기였던지라, 그 사설을 읽으시는 목적은 명확해 보였다. 정작 MZ인 나도 관심을 안 가지는 MZ의 심리나 배경, 행태 등에 관심을 가지시는 걸 보고 '아 우리 세대를 더 잘 이해하려고 하시는구나' 싶어 좀 뭉클했다. 




MZ라고 불리는 건 꽤 기분 좋았다


2년 전쯤, 책 <90년대생이 온다>를 시작으로 MZ만 따로 똑 떼어서 주목하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팀장님 책상에도 버젓이 올려져 있던 책이었으니. 그렇게 피어나기 시작한 의식 덕분에 때로는 진짜 어느 정도는 내 멋대로 해도 되는 자유나 배려가 생기면서도, 어떨 때는 "MZ니까 이해해. MZ는 다르지", 하니까 ‘도대체 MZ들이 어떻길래...? 어때야 되길래?' 하는 궁금증에 결국 나도 책을 읽었다. 



MZ라고 먼저 윗분들이 분리시켜 주고 배려해 주셔서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회사의 피라미드 조직 구조 안에서 말단 조무래기였던 내게 어떤 힘이 생긴 기분. 내가 겁내던 기업 문화, 회식 문화 같은 것도 ‘아 요즘 MZ는 이렇대~’하며 먼저 퇴로를 터주시거나(?) 배려해 주는 문화가 생겼다. 그래서 결국 농담 같지만 '아니, 저 빈말 아니고 진짜 가서 맛있는 거 얻어먹고 싶어요 과장님, 진짜요, 저녁 약속 같은 거 진짜 없어요.'라고 설득드린 적도 있다. 



꼰대력 테스트 같은 것도 한참 유행했다. 꼰대력이 높게 나오셨으면 낮추기 위해 노력하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분위기도 있었다. '라테는~'이라는 말도 생기면서 분명 꼰대였을 분들도 최소한 겉으로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그런 흐름을 타고 전반적으로 우리 세대는 과거보다 더 많은 배려를 받을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오히려 가장 힘든 건 중간 관리자급인 과차장님들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힘든 조직문화 다 견뎠는데, 이젠 아랫사람들까지 배려하셔야 될 테니까.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면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MZ가 팀장이 된다면'과 같은 패러디 영상들도 떠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또 직책이 사람을 만들지 않겠나.




| MZ라는 낙인


하지만 부작용도 당연히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용어로 사람들을 뭉뚱그려 묶는 것은 강력한 낙인효과를 낳는다. MBTI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너는 P니까 이렇지, 너는 T니까 이렇겠다, 하는 식의 추측이나 단정은 좀 위험하다. 성숙한 성격의 사람은 MBTI가 꽤나 모호하게 나온다고 한다. 뭐든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는 만큼, 두 가지 극단적인 성향을 잘 조화시켜서 사회생활에 잘 이용해 먹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거 알아서 이해해 줘'라는 식의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갈등의 불씨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MZ에 대한 틀에 박힌 모습도 마찬가지다. MZ는 에어팟을 끼고 일하고, 사수나 선임이 말하는데도 눈알을 부릅뜨고 있고, 퇴근시간만 되면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도망치듯이 나가고, 그런 모습들이 '맞아 쟤네는 원래 저러지'의 인정인지 낙인인지 모를 의식을 만들어낸다. 혹은 안 그러고 있는 이들에게 '저래도 되는 건가, 다른 또래들은 다 저렇게 속 편하게 회사생활 하고 있나'는 생각을 심어줄수도 있고.



요새 MZ들은 뭐 하고 놀아?라는 질문에, 글쎄요... 저도 몰라요.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고 노는지, 그게 몇 문장으로 답변이 될만한 획일적인 모습일지. 뭐만 해도 MZ, 안 해도 MZ, 어떤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는 가짜 MZ인가, MZ들이 다들 관심 가지고 한다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게 MZ로 분류될 자격이 있는 건가 싶기까지 했던 것 같다. 친구들도 가끔은 그런 낙인이 짜증 난다고 토로한다. 뭐만 하면 MZ라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도 엠즤라서,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것도 엠즤라서, 엠즤니까 뭐든 시키면 잘할 거야, 엠즤들은 요즘 갓생 살기 챌린지 같은 걸 한대, 좀 깍듯하면 또 요즘 엠즤같지 않네. 그런 말들 사이에서 또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특정 계층에 이름을 붙이는 건 복잡한 유인원 무리인 인간을 좀 체계적으로 이해해 보기 위한 통계학적 노력의 일환이다. 계층을 이루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양식을 마치 그 무리 전체의 특성인 것처럼 부풀려서 선전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다 그래', '중국인들은 다 그래', '요즘 애들은 다 그래' 등등, 무리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화법은 끝이 없다. 이런 식의 일반화는 극히 일부의 타겟팅에만 분별 있게 사용되면 좋겠지만, 오직 나이 하나로 그 연령대 전체의 트렌드를 다 파악했다는 식의 움직임은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시킨다. 오히려 계층이 트렌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트렌드가 계층을 만들어가는 식의 강화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조금 시들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세대 구분은 언제든 유효하다. 이미 Z 다음 세대인 알파 세대(다시 알파벳 한 바퀴 돌았구먼)를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움직임이 있다. 시대의 분위기나 관심사를 파악하려는 목적에서는 참 좋은 분류지만, 개인의 개성이나 관심사보다 같은 또래들의 트렌드로 뭉뚱그려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너무 일희일비하거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명상 같은 활동이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남들이 뭘 하고 살든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감정과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 우리 각자의 색깔이 더 진하게 물들어 전체적인 트렌드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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