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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May 21. 2023

발리 요가원에서 심리상담을 받다

그것도 슬로바키아 심리상담사에게..!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요가의 성지인 우붓으로 끌리듯이 향했다. 우붓은 공항 쪽 도심으로부터 택시로 약 1시간 ~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숲 속 도시이다. 메이플스토리의 엘리니아 같은 느낌이랄까.



| 불안에 잠식되는 아침


다음날 새벽 6시경 눈이 자동으로 떠졌고, 또 불안감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인생에 대한 온갖 걱정들이 휘몰아치는 흙탕물 속 모래들처럼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많은 생각과 걱정들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 때 베개를 꼭 껴안았더니 조금 나아졌다. 8시로 요청했던 조식을 억지로라도 먹으니까 조금 더 나아졌다. 그래도 식욕은 돌아왔구나. 이 정도의 불안감은 살면서 처음 느껴봤다.



불안을 1에서 10의 범위로 생각해 봤을 때, 수능 보기 전날이나 면접보기 직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 직전의 불안감 등을 9~10으로 본다면, 이 때 매일같이 느껴지는 불안이 거의 9~10 수준이었다. 수능이나 면접은 한순간이고 금방 끝나지만, 이렇게 모호하고 강렬한 불안을 지금처럼 계속 느끼고 있는다면 내 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 버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요가원 문은 아침 일찍부터 열었을 테니, 침대를 박차고 일단 나가기로 한다.



Yoga Barn에서는 나름대로 내가 듣고 싶었던 클래스를 골라 들었는데, 첫 번째 class는 이 쿵쾅대는 심장을 운동 때문이라고 착각시키기 위해 격한 운동클래스를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극적으로 좋은 효과를 보았다. 온몸이 긴장과 불안으로 굳어있었는데, 한 순간 사르륵 풀리는 기분이었다. 온 몸에 땀이 거의 샤워를 하듯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더운 날씨에 몸의 수분을 다 땀으로 쪽 빼버리니 엄청나게 개운해졌다. 역시 운동은 만병통치약이다.



그리고, 아무리 홈트를 좋아해도 역시 운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는게 훨씬 재미있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운동을 하니 또 강제로 식욕이 생겨서 식사를 했는데, 원하는 음식을 실컷 먹어도 돈이 별로 안 나오는 기분이 정말 최고다. 메뉴 두 개에 음료수 하나까지 시켰는데 1만 원 남짓 나왔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나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맨날 아침밥 안 먹는다고 바락바락 대들었지만 엄마 말이 옳다. 내가 먹는 게 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후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클래스를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식사 후에도 2시간 정도가 남아서 Yoga Barn에 다시 돌아가 죽치고 앉아 있기로 했다. 여기서 운명적인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JESSICA 와의 만남


물소리가 들리는 코티지에 앉아 낮잠이라도 때리려고 하는데, 한 여자애가 다가왔다.


Do you mind if I seat here?

기꺼이 앉으라 하고, 살짝 눈치를 살피다가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혼자 가만히 있으니까 또다시 올라오는 그 불안감을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들어, 누구든지 말할 상대가 필요했던 참이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Jessica, 슬로바키아의 심리치료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심리치료사라니!! 지금 나한테 제일 필요한 게 심리치료인 것 같은데. 관심이 갔다. 그녀는 심리치료와 명상에 대해 더 깊이 배우기 위해 40일 정도 우붓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마침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내일 출국하는 날이라는데, 이 만남이 참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민들과 마음 상태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을 때, 예상도 못한 대상으로부터 참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한 것은 물론, 자신이 겪었던 불안들도 공유해 주고 도움이 되는 책들도  추천해 줬다. 


부모님의 기대에서 나를 분리하는게 나도 참 어려웠던 것 같아. 

같은 연령대의 여성으로서 부모님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뒤이어 커리어 고민, 여성으로서의 삶, 남자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는데 어찌나 이렇게 말이 잘 통하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 보니 점차 불안감이 사라지며 놀랍게도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그녀도 처음 나를 봤을 때 에너지가 너무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게 느껴졌는데, 대화 후에 내가 참 편안해 보인다면서 기뻐해줬다. 어쩌다 세상 낯선 사람에게 멘탈 테라피 비스무리한걸 받게 되었는데, 행운이랄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해줬어야 하지만 못해주고 있던 말들을 낯선 타인에게 들었다. 진로 앞에서 고민이 되는 건 당연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때 절대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그 길을 먼저 간 사람들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도 수두룩할 거다. 그런 사람들이랑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아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해, 아직 아는 게 없어' 라며 인생을 유예하고 머뭇거리지 말라는 말. 반대로, 아무리 대단한 학위가 있고, 대단한 커리어가 있어도, 내가 여전히 나를 믿지 못하고 나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 이 불안하고 외로운 에너지는 항상 나를 따라다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Fake it til you Make it

 

불확실에 완전히 노출된 상황이 참 괴롭기도 하지만, “이것도 다 인생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내 인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온통 마음이 말랑하고 연약해져서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흐물거리던 상태로 온 이번 여행에서 생존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새로운 환경, 믿을 건 오직 나 혼자인 이 상황에서 오히려 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내가 새삼 낯설고 새롭게 보였다. 



특히 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가는 사실 ’ 내가 뻣뻣하기 때문에 할수록 스트레스 받는다!'라는 핑계를 대며 한 달 배워보고 이별을 선언했던 운동 종목이다. 하지만 여기 와서 가장 먼저 요가원을 찾은 걸 보면, 요가는 단순히 신체 단련이 아니라 멘탈 수련에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운동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나 보다. 마음이 요동칠 때 도움이 되는 명상, 심신수련과 같은 것들의 종합선물세트랄까.


이후 Jessica와 함께 참석한 여성들만을 위한 여성 요가 (자궁 수업) 시간에서도 참 좋은 메세지를 얻었다.


모든 지혜는 내 안에 있고, 정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심각해 보이고 앞이 안 보이는 미래에 대한 문제들이 사실은 아주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가 수업이지만 대화와 메세지 전달이 주를 이룬 이 수업도 거의 테라피 세션에 가까웠다.) 요가 선생님도 본인이 자궁 수술을 할 때, 무조건 다 떼어내야만 하는 옵션만 있는 줄 알았지만, 일부만 제거해도 문제없는 옵션을 찾았다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공유해 주시며 말씀해 주셨다.


There are options.


그 한 마디가 참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러니까, 인생에 더 다른 옵션이 없다고 느끼면서 좌절하지 말고 항상 ’ 내게 더 좋은 옵션'을 찾아 나서는 끈기와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방이 꽉 막혀 오갈 데 없다고 느껴질지라도 옵션은 언제나 있을 테니까. 내가 살아온 세상 속에서 아직 보이지 않을 뿐이니까. 우리는 언제나 옵션을 찾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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