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말고 진짜 그냥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퇴사 직후 4월에 떠났던 짤막한 발리 여행을 마치고 한창 이런저런 공부에 바빴다. 그 때 당시 우붓에 머물면서 거의 요가 말고는 한 게 없었다. 당시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하는 어딘가 고장난 상태였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압박도 물론 있었겠지만, 내가 나를 스스로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너 이제 어떡하려고 그래?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한없이 불친절하고 못돼먹은 나를 데리고 평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목소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는 평생 나와의 싸움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살겠구나, 깨닫고 나서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발리에서의 그 짧은 일주일의 시간은 내가 다시금 생존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호흡기같은 역할을 했다. 행복하고 돈을 펑펑쓰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아, 이런 삶도 있구나'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2023년 7월, 나는 뭔가에 홀린듯이 또 다시 발리로 향했다.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결정한 사안이었고, 애초에는 한 달만 머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2달을 꽉 채워 머물렀다. 세상에 얼마나 나라가 많은데 왜 하필 또 발리였냐고 묻는다면, 단연 주거비용과 정신수양이다. 지금 내 상태로 유럽이나 미국을 가는 건 사치라고 느껴졌다. 위험지역이나 저렴한 숙소를 열심히 찾아봐야 된다는 점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유적지와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에 가버리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봐야지, 이건 먹어야지, 여긴 가봐야지'라는 목소리가 나를 또 쫓아다닐 것 같아서 후보군에서 제했다. 동남아 중에서도 왜 발리냐고 묻는다면, 내가 아무 계획도 없이 노트북 하나랑 옷가지 몇 개만 챙겨들고 걱정없이 훌렁 떠날 수 있는 게 바로 발리였기 때문이다. 1만원 대로도 만족스러운 정원뷰 독실을 쓸 수도 있고, 노트북 들고 떠도는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인식도 박혀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물론 파란 하늘도 한 몫 한다. (한국에선 새파란 하늘을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발리 내 여행지에는 많은 수중 액티비티와 다양한 투어들이 있지만, 그런 걸 하나도 알아보지도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오직 그냥 내가 아는 요가원 근처에서 현지인처럼 살면서 정신수양만 할 심산으로 왔다. 그렇다고 내가 요가를 엄청 오래해왔거나, 강사를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요가를 하면서 함께 곁들이는 명상과 삶을 대하는 철학이 참 마음에 들어서 요가에 홀리듯이 끌렸다. 물론, 여러 동작을 통해 신체 근력도 키우고 식욕도 돋우는 건 덤이다.
예전에는 '거기까지 갔는데 이건 꼭 해봐야지'같은 말들에 많이 신경썼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한 번 갔을 때 유명한 거 다 보고, 좋다는 거 다 해보고 와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얻고 싶은게 뭔지 귀 기울이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로는 나의 직감을 믿는 게 어느 것보다도 확실한 정답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나에겐 그저, 낯선 타국에서도 내 힘으로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기존에 살던 한국이라는 터전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그냥 어찌저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고싶었다.
또 하나 얻고싶은 건 단단함이었다. 어디에 살든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내면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안 좋을 때, 기분나쁜 말을 들었을 때, 타인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을 때, 예상치 못하게 과중한 업무를 떠안게 되었을 때, 사람이 끓어넘치는 만원 지하철에 꽉 끼었을 때, 불행한 감각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건 어느 나라에 있든 마찬가지다. 현지인에게 사기를 당할수도 있고, 숙소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 않을수도 있고, 동행이라고 만난 사람이 정말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고, 투어를 갔는데 보고싶었던 동물을 못 볼수도 있고,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일정을 급하게 변경하게 될 수도 있다. 어느 나라에 살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결국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건 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다스리고 더 건강하게 상황을 소화해낼 수 있게 단련시키고 싶었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변화를 원할 때 가장 쉬운 것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작게는 살고있는 집 공간의 배치를 바꿀수도 있고, 새로운 식물을 들여놓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만나는 사람들의 풀을 바꿀수도 있고, 새로운 취미를 배울수도 있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수도 있다. 나는 의지력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라는 건 너무나 나약해서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자주 하고 싶다면 운동하기 좋은 환경에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우리가 태어난 세상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앞으로 살아갈 공간과 환경은 우리가 의지대로 설정해나갈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자유가 있다. 난 그걸 정말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처음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나를 말리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지금 회사가 돈은 적어도 워라밸도 좋고, 복지도 좋고, 익숙하잖아. 나중에 애 낳고 나이들면 지금 회사가 더 다니기 편할걸
예기불안이 높은 주제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호기심과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인지라, 이직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야, 돈 많이주는 데가 최고야, 일은 어차피 다 똑같아.'와 같은 말들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의 말을 건네듣고 '아, 바깥 세상도 다 똑같구나'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다른 회사는 결코 이전 회사와 똑같지 않았다. 적어도 그걸 내가 스스로 경험해보고 직접 판단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 판단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는 곳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아'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똑같을까? 어디에 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더 많은 장점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곳이 분명 있지 않을까? 나의 여정은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 어떤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나라에만 있는 것은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이런 식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은 어린 마음에 모험심을 지피기 충분했다. 그렇게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