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길을 시작하는 첫걸음
작가로 데뷔하는 고전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출판사에 직접 '투고'하는 방식이다.
"투고" 의뢰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실어 달라고 원고를 써서 보냄. 또는 그 원고.
이와 유사하게 번역가의 경우 출판사에 번역하고 싶은 도서에 대한 '기획서'를 보내 데뷔할 수 있다(고 들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한국어로 옮기고자 하는 외서에 대한 번역가의 분석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의 굵직한 이야기, 한국 시장에서의 마케팅 포인트, 예상 독자와 반응 등 번역가의 전략에 따라 기획서의 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
사실 나는 기획서를 쓴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출판번역 지망생으로서 기획서를 써 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까지 원서 한 권을 제대로 완독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영어 원서 독서력은 매우 짧다. 게다가 내가 읽은 대부분의 원서는 한국 책이 마음에 들어 원서로 다시 읽은 경우이다. 즉, 내가 직접 원서들을 뒤져보며 책을 선택한 경험 자체가 매우 드물다. 그렇다 보니 출판사의 입맛에 맞춰 기획서를 쓰는 건 고사하고, 번역하고 싶은 원서를 찾아내는 일부터 큰 장벽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뛰어난 실력의 전업 번역가들이 한국 독자들을 위해 이미 좋은 책을 소개해 주고 있는 상황에서, 출판 번역을 전업으로 하지 않는 내가 운 좋게 한두 권 어설프게 번역한다고 한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국 주류 출판 시장에서는 시장성이 부족하다고 외면받지만, 그냥 묻혀 있기엔 아까운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번역은 어떨까? 모국어를 도착어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원칙과는 상충되기는 하나,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영 번역가가 애초에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전업 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출판사는 '다수가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의 흥행성과 대중성을 따질 것이고, 전업 번역가 역시 도서를 선정할 때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나의 목표는 '다수가 원하는 책'을 번역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외면당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읽고는 싶어 하도록 만들 줄은 알아야겠으나, 번역물을 선택하는 주요 요인이 '대중성'이나 '흥밋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혹시 "귀 기울여야 할 사회의 목소리"라는 키워드가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하진 않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간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찾아 번역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찾겠다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틈새시장(niche market)을 겨냥해야 하게 되었다. 어차피 홍보, 마케팅, 디자인 등 그 어떤 점에서도 전통 대형 출판사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신생 1인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장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게 목표일 대형출판사들이 보지 않는 시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장르의 도서 읽기 (한국어/영어)
도서 디자인, 홍보, 마케팅 방법 등의 사례를 많이 수집하기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 매일 탐색하고 정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