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교육’ 문화는 극도의 이분법적 사고로 나뉘어있는 것 같다. ‘모’ 아니면 ‘도’다. 한쪽에서는 너무 자녀교육에 몰입해서 하루 종일 SNS와 유튜브나 자녀교육, 입시, 사교육 등등을 다루는 매체에 빠져있고, 온통 이야기의 모든 주제가 ‘자녀교육”뿐인 듯한 엄마들로 가득하다. 자녀교육과 양육에 몰입된 엄마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엄마표영어’로 시작한 소위, 온라인 ‘인플루언서’들은 엄마들에게 내 아이의 교육은 “나로부터 시작되리”를 외치며 매일을 활력 있게, 성실하게 자녀교육에 몰입한다. 영어사교육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엄마표영어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쉬운 도전이 아닐터인데도 많은 엄마들이 ‘투지’ 있는 ‘살뜰’한 영어 홈스쿨링에 도전하고 보란 듯이 전문가 이상의 성과를 낸다.
한편, 자녀를 우수한 대학에 보낸 엄마는 어느새 ‘유튜브의 교육 명사’(교육 전문가)가 되어 소위, ‘아카데믹맘’의 자녀교육 ‘비법’을 전수한다. 힘들이지 않는 육아에 대한 육아/교육전문가들도 “세상 충만”하게 많다. 아이를 위한 이유식 전문가부터 ‘집밥요리’ 육아의 대가로 변신하는 유명연예인들까지. 이들 모두가 일종의 ‘전문가’로 나서서 평범한 우리 엄마들을 기죽인다. 다양한 육아/자녀교육 전문가들이 현시대의 엄마들에게 한편으로는 “하면 된다”와 함께, 한편으로는 “저 정도는 아무나 할 수 없다”라는 좌절감을 선사한다. 자녀를 사교육 없이 소위 명문대에 입학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추종자들이 그 뒤를 따른다. ‘자녀교육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한다. 팬덤도 어마무시하다. 어느 영역에서나 학습하고,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으면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다. (유튜브가 활성화된 이후로 이 현상은 더 심화된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출신과 영역에서 자녀양육과 관련한 크리에이터들이 날로 날로 새롭게 데뷔(?)를 한다. 이들을 소비해 주는 ‘엄마들’의 열망은 사실 한가지일 것이다. 하나뿐인 내 분신과 같은 아이를 좀 더 잘 키워보고 싶다는, 그래서 좀 더 나은 미래를 자녀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단순히 소망일 것이다.
"뉴 마미즘(The New Momism)"은 현대 사회에서 엄마 역할과 모성에 대한 새로운 이상화 및 기대에 대한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가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압력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뉴마미즘’은 미국의 사회 및 문화 변화에 대한 연구에서 사회학자 및 여성학 연구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벌써 20년 전(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에 미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뉴마미즘’의 특징을 현재 우리 한국의 엄마들을 대상으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드라마의 소재부터 시작해서, 모성 및 여성의 역할과 관련된 이러한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형성하고 전파하는 대중매체(ex. 유튜브, TV, SNS등)의 역할을 주목할 만하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mothering’의 모습은 여성들끼리의 대립과 비교도 서슴지 않는다. 한쪽에는 아이의 감성을 돌보지 않는 악마화되는 ‘사교육’에 올인하는 "전업주부"가 있다. 반대편에는 "워킹맘"이 있는데, 이들은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의 스타일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양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지만, 아이가 필요할 때 함께 할 수 없고 교육적 전문성(?)에 취약하다는 이기적인 엄마의 표상으로 영구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어느 그룹도 ‘완전하다’는 mothering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결국, 자기 주도적이고 중심을 잡는 안목 있는 Mothering의 시작은 이러한 “완벽”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엄마의 교육성취에 대한 ‘강박 관념을 없애기’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우리 엄마들도 ‘마더링’과 교육에서 ‘취향’을 챙겨볼 수 있지 않을까?
‘New Momism’ (뉴 마미즘)은 여성들에게 엄마 역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력한 기대를 부여한다. 그래서 ‘New Momism’은 여성이 일과 양육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라고 제안한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직업경력과 모성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맞출 수 있다는 환상을 의미한다. 반면에, 현실에서는 ‘일’과 양육의 요구를 매끄럽게 조정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New Momism’은 여성이 사회적 및 경제적인 제약을 여전히 갖고 있음을 지적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모성애를 우선시해야 하는 한다는 엄청난 사회적 압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직업을 위한 것이든 자기 관리를 위한 것이든 자녀와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것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직면하는 어려움은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워킹맘’들의 경우에는 엄마들이 가족을 돌보는 역할과 경제적 활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며, 일과 가정 업무를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뉴 마미즘’은 강조한다. 그야말로, “슈퍼맘”의 전형이다. 반면, 전업주부인 엄마들에게는 마치 본연의 ‘일’인 ‘full-time' mothering을 교육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을 드러내는 것이 이 ‘New Momism’ (뉴 마미즘)이다. 특별히, 전업주부맘들에게 이 ‘New Momism’ (뉴 마미즘)이 제시하는 ‘완벽한 mothering’을 달성하기 위한 경쟁과 압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 “자녀의 대학입시”이다. 다시 말하면, ‘모성애의 표준화’에 대한 엄마의 대응 전략이 ‘교육’으로의 맹목적 투자인 격이다. 결국 ‘직업’과 ‘mothering’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New Momism’ (뉴 마미즘)이 가진 내재적 모순이다. 왜냐하면, ‘워킹맘’과 ‘전업주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실패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Douglas and Michaels, 2005).
앞서 다루었 듯이, ‘뉴 마미즘’은 미디어를 통해 엄마들은 자신을 희생하고 자기희생적인 모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력한 압력을 준다. 가장 완벽하고 존경받는 엄마가 되는 방법에 대한 완전히 비현실적인 미디어의 ‘맹공격’에 엄마들은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메시지는, ‘만약 당신이 엄마라면, 당신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자녀는 항상 행복해야 하고, 자녀교육에서의 성공은 마치 자녀의 대학입시로 귀결되는 mothering이라는 공통의 메시지이다. 이를 위해서, 엄마는 자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는 완벽한 ‘아카데믹맘’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 앞에 엄마들은 속수무책으로 ‘사교육’에 매달랄 수밖에 없다. 자녀의 교육적 성과가 지구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투명한 목적에서 변질되기 쉬운 mothering이 삐끗 자녀와의 갈등의 상황이라도 생기면 이를 합리화하는 방법으로서, ‘요즘을 다 그렇게 해’라는 윽박지름으로 mothering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무지한 엄마’가 되기보다, 차라리 자녀에게 ‘나쁜 엄마’로 남기를 선택한다. 엄마로서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강렬할 수 있지만 어떤 엄마들은 이 압박만큼 더욱 ‘사교육’에 몰입한다. 어떤 엄마들은 이 압박과의 ‘투쟁’을 멈추고 ‘시골’로 가거나 ‘해외’로 가기도 한다. 결국 엄마가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었던 ‘취향의 mothering’은 중심을 잃는다.
양육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 배웠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겸손하게 엄마의 무능력을 인정하자”를 외칠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만약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순종적이고 엄마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에 한없이 겸손해진다. (그러고 보면, 양육에 어떻게 전문가가 있겠는가? 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반면, 나의 자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엄마’인 내가 전문가 아니던가? 내 자녀를 나보다 잘 아는 전문가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자신감을 갖자. 전문가처럼 보이는 미디어 속의 그분들도 나처럼 어려운 시기를 모두 다 지나갔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상(미디어, 사교육 업체 등)이 만들어내는 많은 왜곡된 이미지에서 나의 mothering의 중심을 잡기가 쉬워질 것이다. 이런 ‘성찰’이 엄마의 일상에서 나만의, 우리 가정을 위한, ‘취향의 mothering’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