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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Mar 22. 2019

세 아이와 네 멋대로 해라

#시작에 앞서

  자존심 따위 개에게 주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고양이에게 주기로 했다.

  날이 좋은 아침에 녀석은 우리집 마당을 유유히 지나간다. 야생고양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통통하고 느리게 걷는 이 녀석에게 나는 말한다.

   "야, 내 자존심 가져가."

  신령스럽게도 녀석이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나는 잠깐 쫄았지만 끝까지 내 자존심을 던져 주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자존심을 덜어낼 거고 녀석은 점점 고고해질 거다.

  

둘째의 그림


  그러니까 마흔이 되어서야 이놈의 자존심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는 자아, 에고, 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내겐 다 같은 줄에 세워 놓고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싶은 단어들이다. 

  벽을 치고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살아도 삶은 예쁜 드라마가 아닌 시트콤이 되어버리고,  받아들이기까지 생각의 감옥 안에서 허우적댔다. 겁이 많아서일 테지. 상처 받을까봐, 그 때문에 되려 상처 받아서 주어진 하루를 와락 껴안지 못하고 마흔이 되어서까지 질풍노도를 겪어야 하는 이 참담함이란. 그러고보니 나는 내 자신과 내 삶을 긍정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던 거다.

  

  그렇게 열심히 에너지를 쏟고 있던 어느 날이었던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 앉아 있었던 것도 같았던 그 어느 날이었던가, 다섯 살 밖에 안 된 둘째가 툭 말했다.

  "엄마, 그냥 웃어."

  나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

  "웃으면 돼?"

  "응, 그러면 ."

  가끔 아이의 입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철학적 답을 들을 때가 있다는 걸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팔랑이며 다른 방으로 갔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힘이 붙는 걸 느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조그만 위로. "뭐 어때요." 첫째가 잘하는 말처럼. 이런들 저런들 뭐가 어떻다고. 자존심 따위 고양이에게 주고 그냥 웃으면 되지.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재미난 시트콤을 만들면 되지.

  

  벽은 허물어야 하고 실수와 상처가 두렵더라도 나를 열어젖혀야 제대로 살 것 같았다. 제대로 나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바르게 키울 것 같았다. 누군가에겐 그 쉬운 일이 누군가에겐 용기를 필요로 한다. 소원해졌지만 생각이 나는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하는 일조차  내겐 그랬다. 고양이에게 자존심을 던져주는 '의식'을 치르고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나지만, 이제는 이런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화를 낸 날엔 열심히 사과를 하고 소소한 일에 불과해도 양껏 용기를 낸 날엔 나를 칭찬하려 한다. 나를 이름 짓는 여러 개 중에 '엄마'의 비중이 크기에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록하려 한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마흔이 되어도 덜 자란 탓에 열심히 커 보려 한다.

  
  고맙게도 아이는 작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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