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읽은 후 해보는 생각정리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아이를 키우면서 상반된 감정을 느낀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간혹 애교를 부리거나 기특한 행동들을 하면 귀엽고 대견하기도 하다. 반면에 자라나는 아이와 공유하는 내 삶을 보면 무언가 나를 조여오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스티브 카렐 주연의 '세상의 끝까지 21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 도지는 홀어머니 손에서 자라는데, 극 후반부에 아버지와 만나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다. 도지(주인공)의 아버지가 도지를 만나서 당시의 감정을 이야기 한다. 아내가 안고 있는 아이를 보며 숨막힐 것 같았다고, 하지만 그 답답한 사람은 나였고. 그 답답함에 도망치고 말았다고. 이 부분 부모로서 느끼는 압박감을 표현하고 있다. 부모라는 책임감이 가져오는 중압을 제대로 표현한게 아닐까 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이 구절을 보며 책임감 없는 아버지로구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같은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아버지의 감정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라는 책에서 나왔던 이 구절이다. 이 구절을 보자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문장이내마음에 와 닿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관심과 정성으로 자라기도 하지만 부모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이 과정이 내게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이 시간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이 모이는 것도 좋지만, 나 홀로 보내는 시간도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시간은 거의 0에 가까워 졌다. 아이가 커가면 조금은 나아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에입학하게되는 시기에 접어들었어도 아이가 내 시간을 공유 하는 시간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사회에 발 딪게 되면서 내 시간은 먹고 살기 위해 소비하게 되는데, 덩달아 내 시간을 강제로 공유하게 되는 존재까지 나타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우리 세대에 접어들면서 딩크족이라는 문화가 퍼지고 있는 것도 온갖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된다는 것이 못마땅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꼬리를 이어서 가족의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한사람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은 단순히 그 사람 하나의 시간뿐 아니라 주변 가족의 시간 역시 필요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을 위한 부모의 시간뿐만 아니라 개인의 학업적 성취, 업무적 성취 역시 한사람이 성취를 위해서는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것이 집안일이든 다른일들이든. 아마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 부모가 이해가 된다고 하나 보다.
반면에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나를 한번 돌아보게 된다. 사실 아이는 거울과 같다는 말은 상투적이라 여겼다. '당연히 부모를 닮는것이 당연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모습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커가는 아이를 직접 보고 있노라면 오만 생각이 다든다.
아이는 결국 부모의 영향을 받아 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된다. 사실 나 혼자 살아갈땐 나의 경제적 관념, 정치적 사상,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 등에 대하여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나를 한번 돌아보게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사상, 생각, 가치나 철학들이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스며 들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바르게 살고 있는지 내 모습을 아이가 배워 이 사회를 살아가게 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란 그 아이가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다는 것 같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아이가 태어나 한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사람 간에 유대감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 모든 것을 가르치며 나 조차도 새로 배우게 되는 것. 그것이 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아버지 아들이어서 좋았어요.'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놀자고 뛰어오는 아들 앞에서 자는척 하면 안될 것 같은데. 마음속에선 갈등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