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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an 02. 2019

놀아도 나중에 서울대 갈 수 있나요?

학습 흥미와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놀이의 긍정적인 효과

“제가 우리 아이를 꽤 놀리는 편인데요. 우리 아이 나중에 서울대 갈 수 있을까요?”


한 학부모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지금은 자녀가 건강하고 밝게 잘 놀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 놀다가는 나중에 좋은 대학을 못 갈까 걱정이라고 한다. 몇몇 학부모들은 순간 뭘 그런 걸 물어볼까 속물 보듯 질문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모든 강연 시간을 통틀어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제일 궁금한 것을 물어봐 주어 고맙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저도 서울대를 안 가봐서 모르겠어요. 그래도 SKY는 나온 사람으로서 경험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야말로 집중력 폭발이다. 오! SKY 나온 사람이 강사였다니. 공부 꽤나 했을 것 같은 사람이 어릴 때는 많이 놀았다며 놀이가 중요하다고 하니 '그럼 우리 아이도...' 하는 마음에 부쩍 관심도가 오른다.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학벌이나 성적, 입시가 여전히 학부모들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놀이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 때 보다도 풍성한 요즘 입시 스릴러 드라마 <SKY캐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는 불편한 동시성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교육은 곧 입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교육은 거대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돌아간다. 물려줄 돈이 아주 많거나 자녀가 애당초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평범한 부모가 평범한 자녀를 입시경쟁에서 빼줄 재간은 없다. 마치 깔때기처럼 사교육, 공교육 가릴 것 없이 결국은 서울대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결판난다. 진짜 교육은 이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 인생이 아니라 자녀의 인생이기 때문에 입시를 선뜻 포기할 수 없다. 좋든 싫든 입시지옥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앤디 리멘터의 한국 학생들에 관한 우화


놀이에 관한 논의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놀이가 우리 아이의 성공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로 수렴된다. 놀 권리 강연에 참가해 놀이의 중요성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자녀가 중, 고등학교가 되어서까지도 혼자 열심히 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정말 얻을 수 있는 것이 실오라기만큼도 없다면 과연 어른들은 놀이에 관심을 가질까? 놀이든, 코딩이든 뭐든 자녀가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같다. 다행히 놀이는 공부에 정말 도움이 된다. 놀이가 교육의 대척점이 아니라 균형점으로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흔히 사람들은 놀면 성적이 떨어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자녀가 나이가 들면 놀이를 아예 없애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실증적인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실이 입시지옥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놀이에 대해 부모의 관심을 끌어내고, 공부와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학업에 있어서 놀이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데이터만큼 설득에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2016년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놀이의 효과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과 6학년 각각 1개 학급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은 학교 안에 새롭게 만들어진 놀이공간에서 매주 한 차례 60분씩 4개월 동안 친구들과 자유놀이를 했을 때 나타난 변화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자유놀이는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이들의 공부 태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먼저 학업에 대한 흥미가 높아졌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와 같은 질문들로 확인해본 학습태도는 매주 한 시간씩 자유롭게 친구들과 놀게 한 아이들이 6%p 더 나아졌다. 특히 학업에 대한 흥미가 낮았던 아이들의 경우는 21%p 올라가는 두드러진 변화를 보였다.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자 학교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런 변화가 공부 흥미까지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두 번째는 집중력이 좋아졌다. 부모들은 자녀의 주의집중 문제가 놀이 이전보다 13%p 가량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교사들의 응답은 34%p 개선되었다는 결과를 보여 더욱 긍정적이었다. 전두엽 뇌파 검사도 진행했다. 전두엽은 우리 뇌에서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이다. 검사 결과 놀이 활동 이후 아이들의 전두엽 알파파가 상승했고, 좌우 뇌의 불균형도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얼마 전에 방송된 EBS의 <놀이는 본능이다> 다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다큐에서는 강제로 공부를 한 아이들보다 자유롭게 친구들과 놀이를 진행한 아이들의 전두엽 알파파가 443.3%나 증가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놀이 이전에 좌우뇌 불균형이 심각한 아이가 놀이 이후에 다소 완화된 것을 보여주는 뇌파검사 이미지 


이러한 결과는 한국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학교 배경의 영화를 보면 수업 마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에 나가 노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시간을 야외 놀이시간(recess)이라고 부른다. 미국 소아과 저널이나 질병예방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야외 놀이시간이 수학과 읽기 성적을 향상시키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치유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장시간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와 주의 산만, 꼼지락대기(fidgeting) 증상이 놀이시간을 통해 개선되고, 뇌에 산소와 글루코스의 공급이 원활해져 두뇌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외 놀이시간이 아이들의 성적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놀이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오른다. 과연 놀면 성적이 오를까? 엄밀하게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성적은 시험을 잘 봐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시험 방식에서는 아무래도 의자에 어느 정도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놀이가 성적을 올리는 마법을 부리지는 못하지만, 공부를 잘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학업에 대한 흥미나 집중력은 키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 공부를 잘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기른다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확실히 놀이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야외 놀이시간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는 해외 동영상


놀아도 서울대를 갈 수 있냐는 질문은 사실 답을 찾을 수 없다.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궁무진한데 놀이 하나만 가지고 그것을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놀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놀이를 억지로 시키거나 놀이학원 같은 곳에 보내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는 자유놀이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진행하는 놀이야말로 아이들 안에 있는 집중력과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준다. 


결국 놀이의 힘과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공부와 놀이를 적절하게 맞춰 주는 것이 현시점에서 부모가 노력해야 할 최선이지 않을까?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는 교육만 한 손에 들고 가서는 적응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한 손에 놀이를 더 움켜쥐고 양손을 번쩍 들고 당차게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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