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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May 07. 2018

그 많던 여자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자 청소년들의 사라진 신체활동 이야기

몇 달 전 아래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난 아래 문장에서 영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춘기에 이르면 여자 아이들의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리고 절반은 운동을 그만둡니다. 우리(Always)는 여자 아이들이 계속 했으면 좋겠습니다.(At puberty, girls' confidence plummets. And half quit sports. Always wants to keep girls playing)"



대한민국의 여자 청소년들을 생각해봤다. 사실 근래 체육활동을 하는 여자 청소년을 만난 기억이 없다. 저 영상에 나온 것 처럼 다양한 활동은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문체부 보도자료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16년 10대 여학생의 생활체육 참여율(주1회 기준)은 54.9%로 2015년 35.2%보다 대폭 상승(19.7%p)했다. 이는 2016년부터 학교 스포츠클럽 종목의 일정 비율 이상을 해당 학교의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종목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효과로 해석된다."


오! 이미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살짝 문서를 파헤쳐보니 10대 여학생의 생활체육 참여율(주2회 기준)은 실제로 2012년 20.9% -> 2015년 27.3% -> 2017년 41.8%로 점차 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지에 나와 있는대로 참여 여부를 가르는 것이 '1회 30분 이상'인데, 이를 다르게 표현해보면 여전히 일주일에 30분도 체육활동을 하지 않는 10대 여자 청소년의 비율이 47.2%인 것이다. 2012년 74.8%에서 많이 줄어든 것을 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더 심각한 것은 내용인데 10대 여자 청소년은 지난 1년간 참여 경험이 있는 체육활동은 걷기(36.9%), 줄넘기(36.8%), 배드민턴(19.3%), 훌라후프(17.5%), 맨손체조(13.4%) 정도로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규칙적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10대 여자 청소년으로만 한정지어 주로 참여하는 활동을 살펴보면 줄넘기(14.7%), 걷기(13.1%), 수영(11.9%)순이었다. 2015년도 걷기(23.2%), 수영(17.0% *2014년 세월호 침몰), 줄넘기(19.6%), 2012년에도 걷기(28.2%), 줄넘기(25.6%), 수영(8.2%)이었다.


결과적으로 참여 비율은 점차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숫자의 여자 청소년들이 신체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학생의 신체활동량 차이를 분석한 한 논문에 이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 나오는데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 고등학생이 낮은 활동 단계를 보였다. 특히 최소일의 경우 고등학생이 1,270보로 매우 낮은 활동으로 이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하는 활동이라고는 위 영상에서 본 것 같은 다양하고 액티브한 활동이 아니라 걷기, 줄넘기, 수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자 청소년의 최고의 신체활동은 회.전.초.밥


이러한 현실이 지속되다 보니 내가 놀 권리 일을 하며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자 아이들은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 몸 쓰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도 쉽게 '여자 애들은 그래요' 라고 말했다. 말하는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다들 자신의 경험(실제 본인의 경험이기도 하고, 지켜 본 결과이기도 하고)을 빗대어 너무나 쉽게 남자 애들은 공놀이, 여자 애들은 수다라고 이야기했다.


군산시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학교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도 경력이 상당한 연배 지긋한 분들이었음에도 너무나 쉽게 남자 아이들은 풋살장, 농구장이면 되고, 여자 아이들에게는 수다 떨 수 있는 벤치나 코인 노래방 몇 개 설치해주면 된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아동 권리에 민감한 사람들임에도 다들 비슷한 의견이었다.


물론 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시시대에 남자는 사냥을 하다보니 달리기와 길 찾기에 능하고, 여자는 채집을 하기에 위치 기억과 대화에 능해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마치 아파트 주차장에 삐뚤빼뚤 경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아줌마 급하셨나보네'라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했다(실제 내가 이렇게 말해서 아내에게 혼쭐이 났다).


정말 본능적으로 여자 청소년은 '수다'를 좋아하고, '신체 활동'에는 특별히 욕구가 없어지는 걸까? 염색체 X에는 수다가 새겨져 있고, Y에는 큼지막한 축구공이 새겨져 있는 걸까? 그래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자 청소년의 체육참여율이 낮고, 하는 활동이 한정적인 것일까?


본능적으로 신체활동을 좋아하지 않고 욕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카트는 사냥꾼인 남편에게, 물건 고르기는 채집자인 아내에게 (출처: 조선일보, 요거이 2016년 기사다)


하지만 내 경험은 조금 다르다. 난 남자이지만 수다 떠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공놀이를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웃고 떠들기 위해 했던 이유가 크다. 그리고 내가 알던 여자 애들 중에 뜀박질을 좋아하고, 나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고, 몸을 잘 쓰는 아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특히 내가 놀이터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결코 몸을 움직이는 걸 두려워하거나 또래 남자 아이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보다 특별히 몸 놀이를 싫어하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몰려다니며 놀이터를 주름잡고, 맘껏 웃고 뛰고 소리 질렀다.


작년에 상봉 놀이터에 놀러 갔을 때 초등학교 3~4학년 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 서넛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거 재미있어?' 라고 물어보며 말을 붙이자 이내 자기들이 여기 놀이터의 주인이자 보안관이라고 했다. 쭉 지켜보니 주인이자 보안관이 하는 일이라고는 빠른 속도로 놀이터 둘레를 트랙삼아 자전거로 돌며 어린 아이들에게 빽 소리를 지르며 비키라고 하는 일과 미끄럼틀을 뚜껑을 타고 조합놀이대 꼭대기에 올라가 깔깔 거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몸 쓰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었고, 새로운 도전의 열정으로 가득차 보였다.


또한 내가 한강변에서, 요가학원에서, 헬스장, 복싱학원, 산 정상에서 만난 수많은 성인 여성들은 어떤가?


회사 근처에서 복싱 학원을 다닐 때 아마 대회를 준비하는 한 여성 직장인이 있었는데 관장님이 나에게 보디를 좀 대주라고 했다. '보디를 대준다'는 것은 그 분이 펀치 힘을 기르고 실전감각을 키우기 위해 힘껏 내 배 여러 부위를 때리는 거고, 난 반대로 뱃심(혹은 맷집)을 기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며 견뎌내는 일이었다. 난 몇 차례 합이 오가고 나서 진심으로 관장님께 '살려달라'고 외쳤다.


땀 범범에 미소 핀 자신감과 즐거움, 도전의 열정으로 이글거리던 그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분에게 '여자들은 앉아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 몸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요, 여자들은 원래 그래요' 라고 했다가는 보디훅 한방 제대로다.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소녀에게 놀이판에 남녀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William Vanderson/Fox Photos/Getty Images)


물론 여자 청소년 중에도 실제로 신체활동 욕구가 낮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마치 내가 남자임에도 그다지 공놀이에 열광하지 않는 다거나 자동차나 시계에 꽂히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이는 개인 차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다'를 좋아하고 '신체활동'에 흥미를 덜 느낄 수도 있겠지만(여기까지 살펴보진 못했음), 이는 그야말로 경향 혹은 성향인 것이다. 정상범위는 상당히 넓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에서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난혼 경향이 있고 여성에게는 일부일처제의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혼 사회도 있고 하렘제에 기초한 사회도 많다. 이 놀랄 만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양식이 유전자가 아닌 오히려 문화에 의해 주로 결정됨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여자 청소년 중에도 신체활동을 미친듯이 좋아하는 아이, 적당히 좋아하는 아이, 앉아서 수다 떠는게 더 좋은 아이, 움직이는 거 자체가 싫은 아이들 다양하다. 이는 남자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남녀가 없고, 악기를 다루는데 남녀차이가 없듯이 말이다. 그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10대 여자 청소년의 체육활동 참여율(41.8%)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고 이는 70세 이상(44.7%) 보다도 낮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연구에 따르면 걷기와 중강도 신체활동량에 있어서는 젠더 차이가 나타나지 않음에도 고강도 신체활동량에 있어서는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유의하게 높은 것은 여자 청소년이 걷기, 줄넘기, 훌라후프, 맨손체조 같은 것을 유독 좋아한 결과일까? 신체활동 권장량을 충족하는 여자 중학생 비율이 미국 45%, 영국 62%에 비해 대한민국은 25%로 현저하게 낮은 것은 한국 여중생들이 세계적으로 유독 신체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여자 애들은 원래 그래요'라며 여자 청소년의 신체활동 욕구를 모른체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천천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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