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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Apr 01. 2018

아직 그곳에 아이들이 산다

농어촌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난 서울토박이다. 비록 변두리였지만 그래도 30년 넘게 도시생활을 했다. 지금도 수도권 신도시에 산다. 일가 친척 중 시골이라고 할만한 곳에 사는 사람도 없고, 농어촌 출신 친구도 없다. 내 머릿속 상상은 항상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시골 초등학교 졸업생 대표가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통학버스가 없어지면서 후배들이 고생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계기로 농어촌 소규모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일하며 몇 차례 만났다. 같이 버스를 타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며 아이들의 삶이 머리속에 일부 그려졌다.


당시 나는 '아이는 도시에서 키워야 한다'는 슬픈 결론을 내렸다. 어줍잖은 경험으로도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 않아 보였다. 특히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열패감은 상당했다. 삶의질 연구에서 만난 아이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곳에 남는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건 '실패'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이 분 강연을 듣고 악수도 한 사람이라고...!!

  

3월 21일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개헌안 2차 브리핑을 가졌다. 전문을 찾아 읽는데 아래 문장에서 눈걸음이 멈췄다.


"지방자치에 관한 부분입니다. 지방,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 국내 1000대 기업 본사의 74%, 전국 20대 대학의 80%가 몰려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권 공화국인 것은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 지나친 수도권 쏠림은 기업과 대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 시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놀이 인프라도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표적 놀이 인프라는 '놀이터'다.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대한민국의 놀이터는 총 71,329곳(3월 21일 기준)이다. 이중 45%가 넘는 놀이터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국토의 12%에 불과하다. 12% 면적 땅에 45%의 놀이터가 있고, 나머지 88%에 55% 놀이터가 흩어져 있다. 2016년 국토부 도시계획현황통계의 면적으로 비교해보면 수도권이 6배나 더 놀이터가 조밀하게 설치되어 있다.


물론 15세 미만 아동 인구는 전국에 680만 명 정도 되는데 이중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놀이터가 많은게 일순 타당해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 숫자가 중요한 예산 투자의 척도가 되다 보니 인구에 비례하여 예산이나 시설이 들어서게 되고, 시설이 많으니 살기 좋아 사람이 더 도시에 몰린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이미 도시지역 인구비율이 90%를 넘겼다. 10명 중 9명이 도시에 산다는 말씀.


하지만 놀이터는 학교와 같은 사회기반시설이다. 학생이 적다고 학교를 안 지으면 몇 안 되는 학생은 전혀 학습권을 누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없다고 놀이터를 짓지 않으면 아이들은 제대로 놀기 어렵다. OECD는 “시민의 적정한 생활유지와 관련 있는 사회서비스 시설, 즉 교육 및 의료시설, 여가시설, 공원녹지, 공중보건 및 복지, 법, 질서유지, 행정과 관련된 기반시설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회기반시설을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경우 안타깝게도 사회기반시설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공원녹지법)>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1980년 1월에 제정된 <도시공원법>이 이 법의 모체다. 이름에서부터 '도시'가 보이듯이 법이 만들어진 취지 자체가 도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부족하기 쉬운 자연을 공원을 통해 인위적으로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보니 기본적으로 놀이터 조성도 '도시개발'과 묶여 있다.


위 법 제14조는 공원을 만드는 조건이 '개발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도시개발이나 택지개발, 주택단지(아파트)건설 과정에서 어린이 놀이터가 조성되는 것이다. 개발 계획이 없는 지역에 뜬금없이 놀이터가 생기는 경우는 지자체장이 특별히 의지를 발휘하여 밀어붙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드물다. 주민 요청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공원 250미터 이내에 사는 주민 500명 이상의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농어촌에서는 불가능한 조건이다.


6.25 시절에 원주 아이들 사진, 지금도 이럴거라고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다.


1980년에는 지금보다 농어촌에도 아이들이 꽤 많았고, 산과 들로 맘껏 뛰어다니며 놀았으니 놀이터가 무슨 필요가 있었겠냐만 현재 농어촌은 차이가 크다. 2013년에 만난 강원도의 한 아이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차가 쌩쌩 달리는 엄청나게 큰 도로를 건너 15분 정도를 가야해요."라고 말했다.


학교를 마치면 하루에 몇 번 없는 버스나 통학버스 시간에 맞춰 집에 가야 하는데 가서도 집에 아이들만 있고 방임되는 경우가 많다. 2017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농어촌 지역이 맞벌이 비율이 10%가량 높고, 농림어업종사자는 85.6%가 맞벌이다. 농어촌 지역은 빈곤율이 도시의 2배 수준이다보니 밤늦게까지 부모가 일하고, 자녀는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과도하게 미디어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농어촌 아이들의 현실, 특히 놀공간이 부족한 현실은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읍면지역의 경우 함께 노는 대상이 '형제자매'가 42.7%였고, '또래친구'는 10.5%에 불과했다. 미디어 이용시간도 하루 평균 200.81분으로 대도시 170.58분에 비해 30분 가량 길었다. 바깥 놀이공간에 대한 만족감에서도 읍면지역은 75.8%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는데, 이는 대도시 59.6%에 비해 만족감이 낮은 것이었다. 놀공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 또한 59.7%로 47.3%인 대도시보다 높았다.


2013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만난 아이는 "영월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 많아서 더 위험한 것 같아요. 돈이 없어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마땅한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도서관이나 청소년 수련관, 읍내를 나가려고 해도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어렵다며, 청소년 수련관이 생기기 전에는 놀 곳이 마땅치 않아 공터나 빈 연립주택에서 놀았다고 했다.



이러한 열악한 놀이환경은 아이들의 놀이를 줄어들게 하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발달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2018년 3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발표에 따르면 읍면에 사는 아이들의 비만율이 도시지역보다 현격히 높았다. 특히 초등학교 여자아이(도시보다 3.8%↑)와 고등학교 여자아이(도시보다 3.2%↑)는 유독 비만율이 높은 상황이다. 주3일 이상 격렬한 운동도 읍, 면지역이 대도시보다 떨어진다. 특히, 중학교 여학생의 경우 대도시보다 7%나 낮았다.


도시가 갈 곳도, 할 것도, 친구도 더 많다. 도시에서 태어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끝나야 할까?


나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동일한 수준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읍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공부의 기회에서든지, 놀이의 기회에서 차별을 겪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놀이터가 뿔뿔이 흝어져 사는 농어촌에서는 대안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꼭 놀이터가 놀이기구 중심의 야외 공간만 있는 그런 놀이터일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믿을만한 어른과 함께 안전하게 돌봄을 받는 공간,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상상하고, 작당하고, 뛰어놀고, 모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면 어떨까? 그나마 농어촌에도 기반시설로 남아 있는 학교에 그런 곳이 만들어져도 좋고, 학교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곳이 만들어져도 좋다.


이는 결코 한 두개 단체나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농어촌 아이들의 상대적으로 열악한 놀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고, 비용 대비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자꾸 지갑을 닫아서는 안 된다. 영국에서 아이들의 놀이기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 돈으로 3천 5백억 가량을 들여 3,500개의 놀이공간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


우리가 농어촌 아이들의 놀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전히 그곳에 아이들이 살기 때문이다.


보호와 놀이, 실내와 실외를 동시에 세이브더칠드런의 농어촌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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