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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Feb 17. 2018

아이들에게는 아직 하늘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정부에서 실내 놀이터를 확산하는 것은 환영할 일인가?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옛날에는 봄에나 황사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사시사철 하늘이 뿌옇다. 고농도 미세먼지에 중국발 황사까지 극성이다. 많은 부모님이 미세먼지 때문에 자녀를 밖에 못 내보내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현실에서 엎친데 덮친 격이다. 언론에서는 미세먼지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던데 아이를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얼마나 심각한 걸까? 지난해 정부에서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에 따르면 미세먼지 나쁨 단계 발생일(PM 2.5 미세먼지가 50㎍/㎥를 초과한 날 수)이 258일이나 됐다. 민간 기상업체에 따르면 14~16년 서울의 미세먼지의 하루 평균이 나쁨 이상인 날은 13.7일이었다. 올해 미세먼지 '나쁨'기준이 미국, 일본과 비슷한 수준인 35㎍/㎥ 초과로 바뀔 텐데 놀지 못하는 날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바깥놀이가 가능할까?


방독면을 쓰고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도 곧 보게 될지도 (General Photographic Agency / Getty Images)


실내 놀이터가 늘어나고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는 대부분 들어섰고, 새로 만들어지는 신도시 상가에는 건물마다 키즈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대형 복합테마파크는 지역 부동산까지 들썩 거리게 할 정도라고 한다.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실내놀이터 개수는 현재(18년 2월) 2,483곳이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1,493곳이었으니 불과 3년 만에 70% 이상의 폭발적 성장세다.


사람들은 어느덧 정부에서 운영하는 실내놀이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이자 권리인데 미세먼지로 인해 바깥놀이가 어려우니 실내에서 놀아야 하고, 민간의 실내놀이터는 너무 비싸니 공공에서 이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지난달 박원순 시장은 영유아 부모와 함께한 미세먼지 간담회에서 매년 40억의 특별교부금을 활용하여 실내놀이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시흥시에서는 올해 5월 공공형 실내놀이공간 한 곳을 7억 원 예산을 들여 개장한다. 인천에서는 실내놀이터 조례도 만들었다. 이밖에도 정부 부처와 일부 공사에서 실내 놀이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왕! 이제 이런 실내 놀이터도 무료(!)로 이용 가능 하다는 것인가요?! (출처:리틀홈 - 디키디키 사진)


실외든 실내든 아이들의 놀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햇살을 쬐고 하늘을 볼 기회를 더 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아이들은 실내에서 대부분 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집과 키즈카페 등 실내에서 주로 노는 아이들은 77.5%였다. 반면에 놀이터와 공원처럼 바깥 놀이는 18.0%에 불과했다. 시간을 비교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 주에 422분 정도 실내에서 놀고, 바깥은 226분이었다. 약 2배가량 실내 놀이 시간이 길다. 평일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바깥 놀이 실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10개 국가의 12,000여 명의 초등학생 부모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리서치에 따르면 아이들 3명 중 1명은 하루에 30분도 바깥놀이를 즐기지 않았고, 20%는 아예 바깥에서 노는 시간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아이들이 닭이나 죄수보다 바깥 놀이를 즐기는 시간이 적다는 걸 의미한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 최악의 근시 국가다. 19세 서울시민 중 96.5%가 근시라고 한다. 성장기에 바깥 놀이를 통해 햇볕을 충분히 쫴야 하는데 실내조명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망막 도파민(Retinal Dopamine)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생기는 결과라고 한다. 햇살 한 점, 바람 한 점 맛보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 놀 때 만이라도 맘껏 누릴 순 없을까?


하루에 2시간 바깥활동을 하는 죄수들에게 아이들은 하루 한 시간도 바깥 놀이를 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줬을 때 그들의 반응은? (출처: Persil - Free the Kids)


그런 면에서 정부에서 실내 놀이터를 확산하는 것은 당장은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텅 빈 공간에 놀이를 심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또한 자연살균 햇볕과 자동환기 바람이 없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인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소독제를 하루에도 수차례 열심히 뿌리고 발라야 하고, 공기청정기 여러 대를 돌려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에 청소, 유지관리 및 안전담당 인력이 필요하다. 이용료를 받을 수 있는 민간은 발생한 수익으로 유지관리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에서는 이용료를 받기 어렵다.


또한 실내 놀이터는 공기질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지난해 교육부는 학교 내 실내공간의 미세먼지 기준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준이 실외보다 못한 수준이어서 반발에 부딪혔다. 그럴 것이 밀폐된 실내 공간의 미세먼지는 기존 먼지에 실외 먼지가 더해져 개방된 공간보다 더 심할 수 있다고 한다. 마구 뛰는 아이들 때문에 가뜩이나 먼지 날리는 실내 놀이터의 공기질을 높이려면 공기정화설비에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물론 비용이 아무리 높아도 정말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예산도 한계가 있다. 굳이 민간과 같은 아이템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나도 밖에서 열심히 놀면 눈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이누이트들도 요즘은 근시가 늘고 있다고 한다.  유전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실내 공기질 관리법 적용 대상에 '실내 놀이터'를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동안 실내 놀이터가 공기질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미세먼지는 분명 심각하지만 미세먼지가 하루 종일 나쁜 날은 일 년 중 13.7일이었다. 351일은 바깥 놀이를 해도 되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날씨 좋은 날도 밖에서 노는 아이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밖에서 놀 수 있을 때는 충분히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정부의 상상력과 자원을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위치정보와 미세먼지 수준이 자동으로 입력되어 '밖에서 맘껏 놀 시간', '잠깐 놀이를 쉬어요.'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부모나 아이들에게 알리는 앱을 개발해보자. 주변 놀이공간이 자동으로 맵핑되고, 평가와 리뷰가 뜨고, 친구들 현황이 보인다면 바깥으로 나가는 결정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아니면 어디 멀리 갈 필요 없이 날씨 맑을 때 바로 나와 놀 수 있도록 집 앞 길거리 놀이터를 확산해보자.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길거리 놀이터는 행정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놀이터를 살려야 한다. 이미 전국에 5만 개가 넘는 실외 놀이터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세먼지 때문만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걸림돌을 제거하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지 환경진단을 해야 하고, 유지관리에 예산을 대폭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하늘과 햇빛이 필요하다. 미세먼지를 이유로 바깥 놀이를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영국 길거리 놀이터 - 날씨 맑으면 바로 집 앞으로 튀어나와! 이런 상상력에 정부의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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