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자유다. 진짜 문제는 중독! 놀이환경이 중요한 이유
"저희 아이는 내버려 두면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요즘은 유튜브에 빠져 있는데 답답해 죽겠습니다. 이런 것도 다 놀이라고 봐야 할까요?"
강연에서 한 학부모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놀이가 무엇인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얼마나 다급했는지 강연 초반임에도 손이 올라왔다. 이 학부모는 놀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이에게 놀이 시간을 꽤 주는 편이라고 한다. 문제는 아이가 나가 놀기는커녕 허구한 날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다 놀이로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은 내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새벽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 게임을 하고 학교를 마치고 PC방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면 집에 와서 또 저녁 늦게까지 혼자 게임을 했다. 나는 안 그랬지만 더러 밤을 새우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아이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놀이를 했던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앞서 고민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가 보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의 아동 권리 증진을 위한 노력을 점검하기 위한 전문가 모임이다. 이 위원회에서는 2013년 아동의 놀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을 냈다. 이에 따르면 놀이는 아동 스스로 시작하고, 통제하고, 구조화하는 모든 행동과 활동을 뜻한다고 말한다. 또한 재미있고, 불확실하며, 도전적이고, 유연하며, 비생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게임이나 유튜브는 얼추 들어맞는 것 같다.
이번에는 웨일스의 사례를 알아보자. 웨일스는 2010년 세계 최초로 아동의 놀 권리를 법률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다. 놀 권리 모범생 웨일스는 이보다 앞선 2002년 자치 정부 차원에서 놀이 정책(Play Policy)을 수립했는데 여기에 놀이의 정의가 명시되어 있다. 웨일스 정부가 말하는 놀이는 아동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내면의 동기에 의해 스스로 진행하는 행동을 아우른다고 말한다. 외부의 목표나 보상에 따라 행해지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슬슬 몇 가지 키워드가 잡힌다.
우리나라 연구자의 의견도 들어보자. 지난해 연세대 김명순 교수는 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아동놀이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놀이는 목적 없이 아동이 자발적, 주도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한다.
3개 사례만 소개했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놀이를 정의함에 있어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을 보이는데 바로, 무목적성, 자발성, 주도성이다. 쉽게 풀자면 놀이는 성취를 이루거나 보상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없는 순수한 행위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자유롭게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놀이 과정에서도 어른이 개입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끌어간다.
흥미롭게도 놀이 정의에 관한 어떠한 연구에서도 특정 활동을 놀이와 아닌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모래에서 하는 활동은 다 놀이라거나 전통놀이나 골목놀이는 다 놀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상태로 그 활동에 임하는가다. 즉, 활동 가운데 아이에게 무목적성과 자발성, 주도성이 잘 드러난다면 놀이에 가깝고, 반대로 이런 속성들이 없거나 옅어지면 놀이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이다.
합리적인 어른들은 무 자르듯 명쾌한 정의를 좋아한다. 놀이는 일이 아닌 것, 공부의 반대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맞지 않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본 독자라면 개구쟁이 톰이 아주 긴 담벼락을 페인트로 칠해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재미있고 하고 싶은 놀이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칠하게 만든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톰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마법을 부렸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어른들이 볼 때 귀찮은 노동이 신나는 놀이가 되기도 한다.
공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영재발굴단’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영재들이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본인은 정작 놀고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나도 영재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모두 일 가시고 누나도 학교에 가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하도 할 일이 없고 심심해 이달학습이니 다달학습이니 하는 문제집을 3~4권씩 풀기도 했다. 성적을 올리겠다는 목적도,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 한 놀이였다.
이처럼 단순할 줄 알았던 놀이에 관한 정의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가는 이유는 놀이의 궁극적 속성이 ‘자유’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면 아이들은 놀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2014년 경향신문에서 한 조사에서도 그랬고, 올해 초등학교 5~6학년 1,910명을 대상으로 한 충청남도교육연구정보원의 조사에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자유'라고 응답했다. 이에 반해 어른들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자유롭게 놀아야 그것이 진정하게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른들의 간섭 없이, 공부 생각 안 하고 논다는 것은 자유를 생각나게 한다.”라고 아이들은 설명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의견과도 사실상 같은 의미다. 무목적성, 자율성, 주도성이 가리키는 바는 결국 ‘자유로움’이다. 미국 최고의 놀이 행동 전문가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도 그의 저서에서 놀이는 ‘자유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호모 루덴스>로 우리에게 알려진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도 “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게임, 스마트폰, 유튜브 이것도 다 놀이일까?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게임과 스마트폰, 유튜브는 하나의 도구로 그 자체로 놀이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 앞서 살펴봤듯이 그것을 활용하는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즉, 게임을 하면서 혹은 유튜브를 활용해 자유로운 가운데 무목적성, 자율성, 주도성을 발휘하고 있다면 놀이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구마 100개 먹은 것처럼 여전히 답답하다. 진짜 궁금했던 게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이냐 아니냐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해줘도 아이는 자꾸 게임이나 스마트폰 미디어에 빠지는데 이걸 놀이라고 내버려 둬야 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여기 한 실험이 있다. 감옥 같은 우리(cage)에 쥐를 한 마리 넣고 물병 두 개를 준다. 한 병에는 그냥 물이 담겨 있고, 다른 병에는 마약이 든 물을 담았다. 쥐들은 대부분 마약이 든 물을 선택하고 빠른 속도로 중독되었다. 심리학 교수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는 감옥 대신 ‘쥐 놀이터(Rat park)’라는 우리를 만들었다. 교수는 쥐 놀이터에 쥐들이 좋아하는 놀잇감과 좁은 통로를 설치했고, 먹잇감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또한 함께 놀며 지낼 수 있도록 여러 마리 쥐를 한꺼번에 넣었다. 놀랍게도 쥐 놀이터에서는 한 마리의 쥐도 마약이 든 물을 복용하지 않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전쟁 중 미군의 20% 정도가 헤로인 중독이었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쟁을 마치고 이들이 복귀했을 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된 군인들의 95%는 집에 돌아온 후 금단 증상도 겪지 않고 바로 마약을 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위 두 사례는 중독이 결국 중독성 물질 자체보다 사회 환경에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중독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차 고립된 감옥처럼 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브루스 교수는 이러한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회를 바꾸는데 더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몇 년 전 핸드폰을 붙잡고 시간 가는지 모르고 있던 한 아이에게 “요즘같이 날 좋을 땐 나가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게 더 재밌지 않니”하고 말을 붙인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여기가 더 자유롭고 재밌어요”라는 아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가 말한 ‘여기’는 바로 게임 속 세상이다. 나는 “현실세계에서 친구와 함께 노는 게 더 재밌지 않냐”라고 물어보았다. “현실에서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틈틈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서 노는 게 우리 나름의 놀이예요.”
모여 놀만한 장소는 자동차와 아파트에 빼앗겼고, 과도한 학업에 떠밀려 학원과 학원 사이를 뛰어다닌다. 친구는 이겨야 할 경쟁상대다. 친구 때문에 손해 보는 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집-학교-학원이라는 조그만 감옥에 홀로 갇힌 쥐 신세는 아닐까?
내게 질문을 던진 학부모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실컷 맘껏 놀기를 바라며 자유시간을 준 것인데 아이는 게임과 스마트폰에 몰두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 스마트폰만 쥐고 있는 아이를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실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브루스 교수는 감옥 같은 우리에 갇힌 쥐에게 57일간 몰핀이 섞인 물을 마시게 했다. 이후 쥐들을 '쥐 놀이터(Rat park)'로 옮기고 일반 물과 몰핀이 섞인 물 중에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놀랍게도 쥐들은 몰핀이 든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도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중랑구에서 놀이터 개선사업을 진행하며 한번은 PC방 가는 동네 애들을 붙잡아 팝업 놀이공간에서 맘껏 놀 수 있는 기회를 준 적이 있다. 새로운 놀이 공간이 신기했는지 아이들은 거의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놀았다. “여기 언제 또 와요? 피시방 안 가고 여기 오길 잘했어요. 우리 동네에는 놀 데가 별로 없어서 피시방에 가요. 이렇게 뛰면서 놀아본 게 처음이에요. 제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는 날이었어요. 다음에 꼭 다시 와요.”
놀이는 무엇일까? 본능이다. 자유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하기에는 너무 열악하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된 놀이 환경을 만들고, 아이들이 안전한 가운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안전한 탐험의 공간과 두리번거리고 헤맬 수 있는 모험의 시간, 그리고 함께 작당할 친구가 있다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