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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an 23. 2018

아이들은 정말 학교에 남고 싶을까?

오후 3시까지 학원 안 가고 학교에 남아 놀면 아이들은 더 행복해질까?

3~40대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절반 정도가 맞벌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근무시간이 긴 대한민국 현실에서 부모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각 가정이 알아서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학원 뺑뺑이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 집에서 방치되기도 했다. 부모도 지치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릴 때부터 소진된다.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초등학교 1~4학년 아이들에게 오후 3시까지 방과후수업을 의무적으로 시키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어린이집에서는 늦은 오후까지 돌봐주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시면 마치니 '돌봄 절벽'이 발생하는데 이보다는 학교에서 활동하는 게 낫지 않냐는 것이다.


이에 더해 강원도교육청에서는 ‘놀이밥 100’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핵심은 수업 시작 전 30분, 중간놀이 시간 40분, 점심시간 30분 연장해서 총 쉬는 시간을 100분으로 늘린다. 이 프로그램이 정착될 경우 1, 2학년 아이들은 3시에 집에 가게 된다. 이미 돌봄 교실을 확대하자는 정책을 내보인 저출산위원회에서도 이 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응? 내 퇴근 시간이 2시간 늦어진다고?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한결같이 학교를 빨리 떠나고 싶어 했다. 통학환경 관련 일로 강원도에서 만난 한 아이는 집에 가봐야 동네에 친구들도 없지만 학교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집에 가는 게 낫다고 했다. 지난해 만났던 서울 아이도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다면 학교에 남는 게 낫지 않냐고 물었을 때 차라리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은 어른들이 직장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다. 어른들에게 점심시간을 길게 줄 테니 대신 회사에 그만큼 늦게까지 남으라고 한다면 모두들 질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학교에 남는 걸 싫어한다. 학교는 아이들 입장에서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직장 동료와 재미있는 수다를 떨 수 있다고 해도 직장은 직장이듯이 학교도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는 피곤한 곳이다.


아무리 가족같은 회사라도 회사는 엄연히 회사! 칼퇴가 답이다.


최선은 아이들이 학교를 넘어 마을로 나가는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장소가 바뀌어야 하고, 활동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은 학교 안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학교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활동범위가 마을로 확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마을’이 현실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상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은 무엇일까? 분명 학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학교는 앞서 말했듯이 엄연히 공부를 위한 공간이다. '놀이밥 100'처럼 놀 수 있는 시간만 준다고 해서 놀이가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자칫 충분한 후속 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학교에 남아서 놀라고만 하면 아이도,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채 '놀이는 학교에 어울리지 않다'는 잘못된 결론만 남길 거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놀려면 몇 가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먼저, 학교 공간이 놀기 좋은 공간인가? 얼마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초등학생들의 바람직한 놀이 활동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 편성 운영방안>에 따르면 교사 중 93.3%가 '교실'을 주 놀이활동 공간으로 꼽았다. 아이들은 46.1%가 교실을 주 놀이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보았고, 운동장(31.8%)이 뒤이었다. 결국 교사나 학생 모두 학교 안에서 주로 놀고 있는 곳은 교실을 꼽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실은 그대로다. 여기서 애들이 논다고?


교실은 알다시피 아이들이 활동적으로 놀기에는 굉장히 비좁다. 그런 교실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는 다치기 딱 쉽다. 아이들이야 교실이든 어디든 신나게 놀고 싶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들썩 거렸다가는 선생님께 혼나기 일쑤다. 위 연구에서도 학생들은 놀이활동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실에서 놀 수밖에 없고, 이때 주로 하는 놀이는 ‘수다’와 ‘보드게임’이라고 응답했다. 일 년 내내 선생님이 공기놀이만 시켰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다면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면 되지 않냐고? 6학년 남자아이들이 공을 차고, 야구부가 배팅 연습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아래 그림은 강원도교육청이 제공한 시간표 운영 예시안이다. 하루 100분 준다는 놀이밥 시간은 전 학년이 동시에 놀이를 즐기는 방식이다. 1~2학년 어린 학생들이 형, 누나, 언니,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운동장을 쓸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다른 공간이 있지 않느냐고? 복도는 뛰지 마라 넘어진다. 강당, 음악실, 과학실, 미술실 등 특별 교실은 관리 선생님이 없으면 안전문제를 이유로 다 잠가둔다. 심지어 체육관도 체육시간이 아니면 아이들끼리 이용하기는 어렵다. 2016년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과 전북, 부산에서 만난 140명의 아이들은 한결같이 학교에서 놀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학교 화장실이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미세먼지로 바깥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을 3시까지 교실 안에 잡아두고 하루 종일 공기놀이, 보드게임만 시킬 것인가? 앞서 소개한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에서 교사들은 학교에서 놀이가 활성화되려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개선점으로 놀이공간의 신설 및 확장을 언급했다는 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둘째로, 안전에 대한 학교의 부담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도 선생님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면 결국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현시점에서 학교 안 놀이 활성화는 선생님들께 환영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잘 놀다가도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선생님이 옴팡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그렇게 놀다가 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예요?'라는 한마디면 끝이 난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안전사고를 우려한 선생님이 아이들의 놀이를 관리 아래 두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북의 한 아이는 "중간 놀이시간이 있지만 선생님이 줄넘기 같은 할 일을 주셔서 놀이시간이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선생님도 그냥 풀어놓자니 걱정되기 때문에 놀이 수업, 활동, 프로그램을 할 것이다. 이런 구조화된 놀이는 준비하는 선생님에게도 곤욕이고, 짜인 걸 수행해야 하는 아이들도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다.  


한 직장 동료는 친구들이랑 놀라고 자녀를 축구 교실에 보냈는데 아이가 어느날 너무 놀 시간이 없다고 학원을 끊어달라고 했단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놀이, 공부는 공부다.


슬픈 사실은 아이들도 자신들이 놀다가 다치면 선생님이 곤욕에 처한다는 걸 안다. 서울에 사는 한 아이는 "학교 가서 다치면 부모님이 왜 그런 거냐 엄청 뭐라고 하고, 선생님께 전화를 해요. 우리 애가 먼저 그런 거냐, 그때 선생님은 뭐 하셨냐 따지니 선생님도 힘들 수밖에 없죠. 선생님도 저희를 맘껏 놀게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해요. 저희도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안 해요."


학교 놀이와 관련한 강연 때 만난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아이들 놀이를 적극 권장하시는 편이었는데 한 번은 아이들이 놀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부모가 학교에 소송을 걸어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결국 큰 문제없이 끝나긴 했는데 그 이후로 놀이에 놀 자만 꺼내도 학을 떼요." 이런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들께 온전히 안전 책임을 맡기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편찬한 <세계교육정책 인포메이션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사회법』에 “위험 상황을 감독하는 인원을 충분히 두도록 하며 이 인원은 감독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자격을 취득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고, 학교마다 ‘안전담당 교사’를 둔다고 한다. 또한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제3의 기구를 만들어 학교 내 안전사고 책임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리스크 분산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게서 희망을 느꼈던 이유는 출산율, 출생아 수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개인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것에서 인권적 시각,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전환의 범위가 아직 아이들까지는 닿지 않고 있다.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이 실패했듯이, 아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정책 또한 실패하기 쉽다.


그렇지 않으려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을 늦추는 정책을 고민할 때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야 한다. 부모를 위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아이들의 삶을 바꿔서는 안 된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관해 조사할 때 본 자료에 따르면 큰 학교와 통폐합하는 결정을 할 때 의견을 듣고 설득해야 하는 대상을 교육청에서 가이드를 줬다.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은 기본이고 심지어 학교 동문회 의견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빠져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방과후라는 이름의 수업을 하는 것 보다 당연히 '놀이'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좋다. 하지만 그 놀이가 또 다른 놀이 수업이라면 아이들에게는 뭐든 다 자유롭지 않은 활동이다. 결국 학교 안에서 '자유놀이'가 정착해야 한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조사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연구>에 따르면 한국 아이들의 행복도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낮은 이유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놀이에 있어서만큼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주도적으로 놀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이 정도 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출처: Pukekos-Educare)


하지만 '자유놀이'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앞서 밝힌 2가지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을 그냥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결국 교실 안에서 공기놀이 열심히 하는 것으로 끝나거나 보드게임 업자만 기쁜 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학교 안에서 충분히 놀 수 있는 공간이 갖춰져야 하고, 안전 책임으로 인해 교사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논의가 반갑다. 사실 강원도교육청에는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무엇보다 놀이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 이 부분을 건드려줬다는 점 만으로도 박수를 드린다. 하지만 이런 좋은 방향의 정책이 섣불리 시작되었다가 잘못된 오해만 낳고 끝나버리면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으니 잘 가다듬어 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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