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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an 06. 2019

놀면 친해질 수 있을까?

놀이를 통해 싸우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놀면 친구들과 친해진다. 당연한 말이다. "1년 동안 대화하는 것보다 1시간 노는 것이 누군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들은 놀면서 엄청 싸우기 때문이다. 싸우는 게 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옛날에도 놀면서 싸웠다. 하지만 동네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들과 큰 무리를 지어 놀았기 때문에 암묵적인 룰과 위계가 있었다. 함부로 싸우거나 내 뜻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혼이 났다. 놀이를 이어가는 것이 모두에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작정 화를 내거나 어깃장 부리다가는 동네 놀이 집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꾹 참았다. 참다 보면 또 금세 왜 화가 났는지도 까먹고 그렇게 놀이는 지속됐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또래 친구 말고는 동네 위아래 놀이 집단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싸움을 잡아줄 조정자가 없는 것이다. 또한 모두가 귀한 집 자식들이다 보니 의견 개진도 강하고 내 의견이 묵살당하는 상황을 못 견뎌한다. 키즈 카페나 부모 시간에 맞춰 놀다 보니 아이들끼리 충분히 화해할 시간도 없이 부모가 개입해 끝나는 경우도 많다. 놀이터 활동가들은 요즘 아이들과 모여 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토로한다.  


사실 우리 어른들도 싸운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살아가며 타인과의 갈등이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갈등을 능숙하게 조절하며 큰 싸움을 막고 자신의 요구를 충분히 어필하면서도 적당한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사회성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사람은 크고 작은 갈등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기 바쁘다. 어쩔 줄 몰라 초가삼간을 다 태우기도 한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


해외의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그냥 싸우게 내버려두는게 오히려 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다. 놀면서 싸우는 것이 막상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갈등을 풀고 다시 놀 수 있다면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훌쩍 큰다. 사회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그걸 풀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놀이에서 배울 수 있다."


2017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주인공 선과 지아는 절친이다. 이 둘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논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미묘하게 틀어진 감정의 골은 급격히 악화되며 심각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영화 말미에 아이들은 화해 기회를 갖는다. 우리는 그 여름을 지나며 훌쩍 큰 키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성장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그렇게 놀고 싸우고 화해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놀고 싸우면서도 화해하고 성장하는 걸까? 정답은 영화에 나온다. 선의 동생인 윤이는 친구와 싸우지만 또 금방 화해한다. 선은 비결이 궁금하다. 윤의 한 마디.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아이들은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재미있고, 싸운 친구와 다시 놀고 싶기 때문에 어떻게든 화해할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어른들의 개입 없이 아이들끼리 자유놀이를 주기적으로 진행했을 때 사회성 기술이 발달했다. 협동능력, 자기주장성, 자기통제능력 고루 10%p 가량 상승했다. 이러한 능력은 잘 놀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발달하면 덜 싸우고 더 잘 놀게 된다. 놀이의 마법이다.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더 친해진 것 같고, 친해지니까 학교 오고 싶은 마음이 더 생겼어요."


실험에 참가한 한 아이는 자신의 사회성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실험을 진행한 연구진은 "아동들은 자발적인 놀이 가운데 규칙을 협의하고 자기표현을 하면서 자발적 참여나 친구 사귀기 기술이 좋아졌다. 또한 양보나 자기 조절, 비판 수용, 협력 등 사회성 기술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그림검사도 실시했다. 위 그림은 한 아이가 놀이 활동 이전에 그린 그림이다. 아이는 우측 아래에 웃고 있는 사람을 자신이라고 말했는데 이 아이만 짝이 없다. 다른 친구들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거리감, 자신감 부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래 관계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없어 보인다. 놀이 후에는 그림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두려움과 거리감은 사라지고 인물의 크기가 커졌다. 밝은 표정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또래 관계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특히 자신감이 엿보인다. 친하지 않은 사람을 그릴 때는 크게 그리기가 어렵다. 내가 이 친구를 이렇게 그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활발한 교우관계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놀이를 통한 사회성 발달은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하고 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서천석 의사는 "친구들하고 놀이를 하면서 부딪히고 같이 활동해야지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나의 주장을 하고, 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타협을 하는지 배울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도 "우리가 사회에 진출해서 무수히 하는 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놀이터라는 곳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돼요. 거기서 사람을 사귀어 나가고 새로운 놀이와 규칙을 배울 수가 있는 거죠."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꼬마 제충만의 일기


"놀려고 모이긴 모였는데 의견이 맞지 않아서 시간을 많이 끌었다. 싸우기도 하고 의견 차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면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날들이 많다. 결과적으로는 즐거웠지만 그 안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억울해 울기도 하고, 기다림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분을 참지 못해 씩씩대고 우격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 감정을 받아주고 내게 자신의 감정을 주는 '우리들'이 있었다. '우리들'의 놀이는 즐거운 단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맛은 잠깐이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놀이의 단맛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 과정은 쓴맛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단맛 쓴맛 모든 게 놀이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동안 난 사회성을 기르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키즈카페에서 자주 논다.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한참을 지켜봤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 따로 논다. 자극적인 놀이기구에 엉겨 붙어 씨름하고 있지만 아이들 사이의 어울림은 찾기 어려웠다. 떼로 소리 지르며 몰려다니지만 각자 피하고 있을 뿐이다. 빔프로젝터가 쏘는 빛을 보며 한참을 혼자 벽에 공만 던지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2시간에 12,000원을 주고 신나게 웃다 집에 돌아간다. 놀이의 단맛만 보는 것이다. 억울해하는 아이가 없도록 요원들이 곳곳에 포진해 아이들을 흩어 놓는다. 소리치고 짜증 내는 아이가 없도록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과 분리시킨다. 아무런 갈등도 싸움도 관계도 없는 진공의 상태에서 아이들은 어떤 쓴맛을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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