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
지난해 봄 놀이에 관한 해외 기사를 읽고 있었다. 한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케아, 유니레버, 레고의 CEO가 모여 놀 권리 캠페인을 발족했다는 짧은 소식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세계경제포럼의 이미지는 최고급 호텔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부자 엘리트의 모임이나 신자유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심장이었다. 이런 곳에서 놀이라니 뜬금없다. 더군다나 이케아, 유니레버, 레고는 매출액을 합치면 우리나라 예산의 1/3 가량을 벌어들이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 아닌가? 레고야 그렇지만 다른 두 기업은 놀이와 크게 상관없는 곳이지 않나. 어울리지 않아도 너무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국내 언론 기사를 먼저 훑어보았다. 안타깝게도 오랜만에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미국 대통령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놀이의 '놀'자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세계경제포럼과 협력하고 있는 Jenny Anderson이 작성한 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자동화(automation)에 의해 대체될 인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많은 사람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동자를 재교육시키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의 필요를 맞추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케아, 유니레버, 레고의 CEO들은 인력 공급망을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해결책을 가져왔다. 과학적이지만 아직은 인정을 덜 받고 있는 방법, 바로 놀이다.
이들은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며 교육체계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이들은 놀이가 미래에 아이들이 기계에 맞서 활용가치가 높은 능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나 창의력(creativity), 문제해결능력(problem solving)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기업들은 놀이에 관한 캠페인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족한 것일까? 세계경제포럼은 사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다. 심지어 교육이라는 주제도 부차적이다. 자본주의에 관해 이야기하고, 사람도 일하는 사람 즉, 노동력으로써 다룬다. 이런 자리에서 놀이를 이야기한 이유는 다른 다국적 기업이나 정부 엘리트들에게 자본주의적 시각에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들은 놀이가 급격히 사라져 가는 현대 사회와 교육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이 자란다면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량실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중의 분노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기업들은 아이들을 재교육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때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놀이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놀이를 통한 교육을 확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미래를 위한 선제적인 투자다.
난 충격을 받았다. 그간 나는 놀이는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것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 발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정도로 여겼다.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역량을 기르기 위해 놀이가 필요하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놀이의 중요성에까지 생각이 닿은 대형 기업들이 앞다투어 놀이를 강조하는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으로 세계는 놀이를 여러 방면에 접목시키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시니 수시니 하는 논의에 국가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이길래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의가 세계경제포럼에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일까?
우리의 부모 세대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상 가능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지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성공적인 삶이 펼쳐졌다. 하지만 IMF를 거치며 성공 방정식이 무너졌다.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좋은 직장도 불안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평범한 학부모는 도저히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사회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전망은 염려를 증폭시킨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보고서를 통해 오늘날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65%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고, 향후 5년간 약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가트너의 예측은 더 암울하다. 2023년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 업무의 3분의 1 이상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2030년에는 현재 일자리의 90%가 자동화될 것이라고 한다. 2030년이라고 해봐야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지금처럼 키운다면 과연 우리 아이라고 기계에게 걷어차이는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주변에서는 일자리를 잃고 있는 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이제는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는다. 거대한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다. 지금은 그나마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주문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을 알아보고 취향을 종합해 '너 이거 좋아하지 않니?'라며 추천을 해줄지도 모른다.
아래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직군 중 하나로 택시 운전사가 나온다. 과학기술에 무지한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온 대출심사역(Loan Officer)도 마찬가지다. 이미 신용도 평가에 필요한 금융정보가 다 데이터화되어 있는데 굳이 사람을 만나 대출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자동화된 프로그램이 빠르고 정확하게 심사를 해주리라 생각한다. 이 때문일까? 지난해 시중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만 2,000명이 넘는 인력을 구조조정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실 앞서 소개한 기업들은 세계경제포럼에서 한목소리를 내기 이전에도 각자 놀이를 강조하는 캠페인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이케아는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놀이 보고서를 발간했고, 2016년에는 "Let’s Play for Change"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시작해 장애 아동을 위한 놀이 기회 제공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유니레버의 경우 "Dirt is good"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2005년부터 시작해 10년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레고도 지난해 놀이 보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2015년부터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놀이를 통한 교육(play based learning)을 반영한 "Play Lab"을 운영하고 있다.
각자 놀이를 위한 활동을 하던 이케아, 유니레버, 레고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의 변화는 급격한데 비해 아이들의 놀이는 점점 더 사라져 간다는 심각성이 그들로 하여금 한목소리를 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놀이가 사라진 것으로는 다른 나라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우리나라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맞서 일자리를 지키는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아이들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 메인사진은 세계경제포럼에서 The Real Play Coalition을 발족하는 3 기업 CEO 현장 사진 (왼쪽부터)
Jesper Brodin Chief Executive Officer, IKEA Group
Paul Polman - Chief Executive Officer, Unilever
John Goodwin - Chief Executive Officer, The LEGO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