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충만 Feb 03. 2019

미지의 세계로 한 발짝 내딛는 힘

놀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

올해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간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놓자는 제목의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에서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앞두고 교육과 기술 개발을 통해 인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산업계 전반의 적극적인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이 자리에 작년에 이어 이케아와 레고, 유니레버의 수장들이 모였다. 이들은 인간에 대한 투자에 있어 놀이를 통한 교육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놀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놀이 시간은 한 세대 전에 비해 50% 이상 감소했고, 10명 중 1명은 아예 바깥 놀이시간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의 소득과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놀이 기회 차이가 발생하고, 심지어 남자, 여자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다.


이렇게 놀이가 부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 기업들은 말한다. 왜냐하면 놀이를 통해 키운 능력이 아이의 일자리를 기계로부터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데 놀이가 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성별과 사회경제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놀이기회의 격차를 보여주는 자료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4개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창의성과 공감, 손기술, 복잡성이죠.” (Kai-Fu Lee)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은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대만 출신 벤처 투자가이자 구글 차이나 대표였던 AI 전문가 Kai Fu Lee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쉽사리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 창의성과 손기술, 공감, 복잡성이라고 말한다. 창의성과 공감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 손기술(dexterity)은 무엇일까? 인간의 뛰어난 두 손이다. 꽤나 정밀한 로봇도 땅에 떨어진 연필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엄청 답답하다. 느리고 쉽사리 놓친다. 어린 아기의 손이 낫다. 인간이 얼마나 뛰어난 손기술을 지녔는지 BBC 기사는 말하고 있다.


복잡성(complexity)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을 보며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에 대해 알게 됐다.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며 스스로 실력을 키우는 인공지능은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행히(?) 다양한 수준의 정보를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고 요약하고 개념화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사고하며 큰 조직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알파고가 아타리 게임을 스스로 학습해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이렇듯 기계가 따라오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면 이 영역의 능력을 발달시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부터 21세기 인간이 갖춰야 할 능력으로 4C가 꼽히고 있다.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소통 능력(Communication), 협업 능력(Collaboration)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키워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남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애들 많이 사는 신도시인 우리 동네에는 벌써 창의력 학원이 몇 곳 생겼다. 창의력 학원들은 주로 미술, 수학, 로봇, 코딩 교육을 한다고 한다. 광고 문구도 요란하다. '그룹식 소통과 협업을 통해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키웁니다' 뭐 이런 식이다. 이를 가르치는 창의력 지도교사도 있다. 하지만 커리큘럼이나 모집 방식을 살펴보면 전혀 창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십여 년 전 감성지수(EQ)가 유행하며 우후죽순 관련 학원이 생겨났던 시절이 있었다.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감성지수가 쉽게 외워서 배울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C도 학원에서 책을 넘겨가며 지식을 외운다고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룰이나 방법론, 유용한 생각 도구는 얻을 수 있겠으나 실제 능력 개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럼 무엇이 4C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일까? 놀이다.


놀이가 4C를 키운다는 연구결과는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놀이교육 연구소 소장인 David Whitebread 교수가 쓴 을 읽거나, 얼마 전 방영한 EBS 다큐멘터리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럼 이제 우리 아이가 4C만 잘 개발하면 미래의 인재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왜냐하면 미래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의 주가와 기상현상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류가 과학기술 혁명이 가져올 여파까지 반영해 미래를 예측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정답을 빨리 알고 싶은 조급함이 우리를 현혹할 뿐이다. 4C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교육 이론들이 이런저런 역량들을 강조했다. 하지만 특정 역량을 갖췄느냐 아니냐 만으로 미래는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상상해보자. 어느 먼 훗날 미래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 이들의 특성을 뽑아내면 모두가 4C를 갖춘 사람들일까? 다 제각각일 것이다. 실패한 사람 중에서도 4C를 갖춘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놀이는 답이다. 왜냐하면 놀이는 4C를 넘어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창의력 올림픽도 있고 올림피아드도 있다. 창의력 학원이 속속 생기고 있다. 학원에서 창의력을 배울 수 있나?


미국놀이연구소 설립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는 TED 강연에서 한 실험을 소개했다. 실험에서 한 그룹의 쥐는 자유롭게 놀게 했다. 다른 그룹의 쥐는 놀이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고양이 냄새가 나는 물건을 한쪽에 놓으면 쥐들은 모두 구석으로 도망쳤다. 여기까지는 두 그룹이 동일한 행동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놀지 않은 쥐들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숨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죽은 것이다. 하지만 놀아본 쥐들은 서서히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놀이가 가진 근본적인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변화에 대한 적응력, 모험심, 탐험심, 회복 탄력성, 무슨 이름으로 붙여도 좋다. 분명한 것은 이 힘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닥칠 변화에 맞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다.


포유류 동물은 유아기에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인간은 유아기가 포유류 전체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종이다. 취약한 조건을 가졌다. 그럼에도 인류는 온갖 크고 작은 자연환경과 사회 변화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가 놀이를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끊임없이 주변을 탐험하고, 상상하고, 만들어갔던 것에 있지 않았을까?


흥미롭게도 인공지능은 관찰하지 못한, 구조화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은 다루지 못한다고 한다. 알파고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아무런 입력값 없이 뚝 떨어뜨려 놓으면 스스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새로운 변화 앞에 어찌하지 못해 그대로 멈춰버린 놀지 못한 쥐들처럼 말이다.


"자유롭고 자기 주도적인 놀이는 아이들이 당장 내일 맞이할 알 수 없는 미래에 매우 유용한 기술을 전수해줄 것이다" (Ken Robinson)


미래는 어차피 알 수 없다. 불안한 부모 마음에 이런저런 학원도 보내고 좋다는 역량도 키워주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변화가 두려워 가만히 있는 쥐가 아니라, 변화에 맞서 당당히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미래에 적응해야 한다. 이때 놀이는 분명 답이 될 것이다.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의 "놀이는 즐거움 이상의 것(Play is more than fun)" TED강연


* 메인 사진은 Peter Gray의 AEON 매거진의 글에서 활용하였습니다.

   Photo by Alex Webb/Magnum

   https://aeon.co/essays/children-today-are-suffering-a-severe-deficit-of-play

이전 12화 이케아는 4차산업혁명에 대응을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