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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an 11. 2019

모텔촌 한가운데 놀이터
보내시겠습니까?

일상의 놀이공간 회복은 동네 놀이터에서부터 처방약 3-Zone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하다면 평범한 학부모는 어떻게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놀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과도한 사교육으로 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준다면 어디에서나 어떻게든 잘 논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직접 키우는 부모 입장은 좀 다르다. 막상 시간이 생겨도 아이들이 놀 곳이 없다. 자녀의 놀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동네에 안전하고 양질의 놀이공간이 부족하다를 꼽은 학부모가 가장 많았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의 절반이 맞벌이인데 일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아이를 돌보며 놀이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  


어린 시절처럼 친구들과 마을에서 맘껏 뛰어다니면 좋겠지만 그런 마을은 대한민국에 없다. 강력범죄가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사회적 신뢰 수준은 미국, 일본, 중국보다 낮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애들끼리 동네를 활보하면 위험해 보인다고 느낀다. 친구들은 모두 학원 가 있는데 자기 자녀만 동네를 어슬렁거리게 할 수도 없다. 내놓은 자식이라는 뒷말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일상의 놀이공간이다. 매일 시간 날 때 가볍게 나가서 놀 수 있는 곳.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잘 관리되어 있고 안전한 그런 놀이공간이다. 물론 주말에는 키즈카페도 좋고, 쇼핑몰도 간다. 하지만 일상적인 놀이공간은 아니다. 매일 테마파크를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거리도 거리고, 비용도 비용이다. 아이 혼자서 갈 수도 없다. 부모가 하루 종일 아이 뒤만 따라다닐 수는 없다. 평범한 일상에 녹아 있는 그런 놀이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있다. 바로 동네 놀이터다. 동네 놀이터는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다. 우리 사회가 법으로 아이들에게 제공해주는 유일한 놀이 인프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동네 놀이터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막상 동네에 없거나 너무 멀기도 하고, 술 드신 어른들이 점령하고 있기도 하다.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더럽게 방치되고 있는 곳도 많은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동네에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린 시절 문만 열면 바로 골목길이 무한한 놀이터였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 일상의 놀이공간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동네 놀이터의 회복에서부터 이지 않을까?



현재 전국에 7만 여개의 놀이터가 있다. 이들 중 우리가 동네 놀이터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하는 어린이공원 1만여 곳과 아파트 놀이터 36,000곳이다. 이 둘을 합치면 전국에 설치된 편의점 수와 비슷하다. 너무 도시에만 몰려 있어서 그렇지 적다고 말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동네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까? 3-Zone 처방이 시급하다.  



처방 하나. 음주흡연청정구역


어른도 더러운 곳을 싫어하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동네 놀이터가 더러운데도 아이들이 잘 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놀이터를 더럽히는 가장 큰 요인은 술과 담배다. 이중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빈번한 음주행위는 청결도 청결이지만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안전하지 않은 곳이고, 아이들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을 만드는 고질적인 문제다. 


유명무실하긴 해도 흡연의 경우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음주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조차 미비한 상황이다. 그 결과 놀이터에서 술을 먹는 어른들을 아이들이 신고해도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아이들 노는 곳인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라며 계도밖에 못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놀이터에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술병을 든 채 누워있던 노숙자를 경찰이 내쫓은 행위가 공무집행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물론 일부 지자체는 조례로 어린이공원을 음주청정구역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상위 법이 없다 보니 실질적인 규제보다 시민들의 인식 증진 차원에 그칠 뿐이다. 복지부 연구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음주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 국민들의 찬성률이 96.2%였다. WHO의 조사에서 전 세계 163개 국가 중에서 절반이 넘는 92개국이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음주에 대해 규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함께 규제 없는 나라에 속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서둘러 놀이터 음주 규제를 해야 한다. 




처방 둘. 어린이보호구역


강연을 하며 만난 학부모님에게 놀이터가 어린이보호구역인(스쿨존)지 아닌지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보호구역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놀이터는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다. 놀이기구가 아무리 안전하고 놀이터가 깨끗하게 관리되어도 놀이터를 오고 가는 길을 안심할 수 없다면 아이를 내보내기 꺼려진다.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 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 10건 중 6건은 어린이공원 주변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중 사망사건이 62건이나 되었다. 충격적이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놀이터를 아예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교통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이 되면 주변 도로의 통행 속도를 제한하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어린이공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호울타리, 과속방지턱, 어린이보호구역 안내 표지를 설치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어린이공원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만드는 내용의 <어린이 안전대책>을 지난해 발표했다. 지금은 유치원,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에만 해당하던 어린이보호구역을 어린이공원으로 확대하고, 2022년까지 매년 300여 개씩 어린이보호구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과 통화해보니 정책을 추진하려면 법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공원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안은 이미 발의되어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 정부 발표도 말짱 꽝이다. 안타깝다.  


캐나다에 있는 놀이터존 표시 - 놀이터 주변은 시속 30km 아래로 달려야 한다. 



처방 셋. 교육환경보호구역


당신이 만약에 도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놀이터는 어디에 설치해야 할까? 아이들 노는 곳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고 오고 가기 편하며 안전한 곳에 설치하려고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놀이터의 입지는 도시계획 과정에서 그다지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좋은 땅은 돈 될만한 것에 다 빼앗기고 엉뚱하고 외진 곳에 들어서기도 한다. 마을과 한참 떨어진 외딴곳에 놀이터가 만들어진 경우도 많고, 어른들조차 건너기 부담스러운 큰 도로 몇 개를 건너야 놀이터에 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더군다나 설치 기준에 주변 환경에 대한 평가가 없기 때문에 모텔이나 공장, 술집과 같은 위험해 보이는 곳 옆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LPG 가스를 판매하는 영업소 바로 앞에 놀이터가 만들어진 것도 볼 수 있었고, 모텔촌 한가운데 놀이터가 만들어져 아무도 가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아무래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결국 놀이터는 이용률이 떨어져 황량해진다. 


놀이터를 교육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새로 만드는 놀이터부터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육환경보호구역이 되면 주변에 퇴폐업소나 공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동정책영향평가 도입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아동정책영향평가는 아동 관련 정책이 만들어질 때 아동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그 결과를 시행할 때 반영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에 아동정책영향평가를 적용하게 되면 적어도 모텔촌 한가운데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 주십시오. 산보와 소풍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주십시오."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날 선언문에서 현재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예견하며 놀이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마찬가지다. 루스벨트는 "놀이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놀이터는 학교와 같이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모든 소년과 소녀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놀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놀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동네 놀이터가 아이들의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 때문이다. 


동네 놀이터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의 상당수는 놀이터를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중요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가 좋은 곳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가장 자주 거론한 곳도 놀이터였다. 어른들이 볼 때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많이 안 노니까 놀이터에 대해 별생각이 없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공터 이상의 의미 즉, 동네를 안전하게 느끼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인 것이다. 


문 열고 뛰어나가 친구와 언제든지 뛰어놀 수 있는 평범한 동네 놀이터가 중요하다. 동네 놀이터가 살아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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