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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ul 01. 2020

그 시절, 우리에게 스토리스튜디오가 있었다면?

[만 매니저 레터. 2 ]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스스러 '서진'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누구든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안녕하세요 :D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 제충만, (a.k.a 만 매니저)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이하, 스스)에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 지 1달 정도 지났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쓰겠지.' 라며 상상만 해온 공간에서 복닥복닥 아이들이 움직이고 뚝딱뚝딱 작업하는 소리를 듣게 되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스스를 아이들이 좋아할까, 자주 오기는 할까 염려 섞인 마음이 사그라진 한 달이었습니다.


사실 스스는 4월 13일에 문을 열었지만 아이들이 등교 개학하는 날까지 어른들을 대상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스스를 방문한 어른들이 나중에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몰고 나타날 거라는 기대로 정성스럽게 투어를 준비했습니다. 진심이 통했나요? 2달 동안 300명이 넘는 어른들이 스토리스튜디오를 방문했습니다.


스스를 둘러본 어른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공간이 있었어야 했는데." 공간 자체가 주는 매력과 잘 구성된 콘텐츠에 감동한 어른들은 연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쉬워합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라도 매일 와서 써보면 안 되냐는 애교 섞인 간청도 들었습니다.


만 매니저도 비슷한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마도 스스가 있었다면 좀 더 인생이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스스에서 받은 자극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다음 단계로 훌쩍훌쩍 넘어가는 스스러를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19세라 스스에 올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화가 난 스스러 '솜'의 그림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스스러 서진


12살 스스러 '서진'을 처음 만났을 때 에너지가 넘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스스보다 맘껏 뛸 수 있는 놀이터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진은 벌써 스스에 6번이나 왔고, 한 번 오면 3~4시간 몰입해서 작업을 즐기는 찐 스스러가 되었습니다.  


스스에 처음 왔을 때는 서진도 무엇을 할지 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습니다. 저는 서진과 함께 온 어머니에게 서진이 영상 편집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힌트를 얻어 쉽게 다룰 수 있는 앱을 들고 서진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서진과 함께 온 단짝 친구가 앱을 조금 다룰 줄 알아 모르는 것은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유튜브 강좌를 연결해주었습니다. 이내 까르르 소리가 스스를 채웠습니다. 툴을 금세 익힌 모양입니다.  


서진 안에 있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찰흙으로 '뽀로로'와 '도루마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스스의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1분 16초짜리 <뽀로로의 수난시대>라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연결시키고 자막과 음악을 깐 단순한 영상입니다. 그럼에도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진이 스스에서 만든 첫 작품 <뽀로로의 수난시대> , 이후 <탐험가 뽀로로> 시리즈 3편을 필모에 추가했음.


며칠 뒤 서진은 <탐험가 뽀로로> 시리즈를 만들겠다며 스스를 다시 찾았습니다. 집에서 며칠간 캐릭터 궁리를 했는지 찰흙 캐릭터들을 채색하는 손이 날아다닙니다. 영상을 촬영하고, 목소리를 녹음해 내레이션까지 시도했습니다. 가장 최근 영상인 3편 '탐험가 뽀로로 - 배신의 소굴'에서는 상황에 맞는 영상 클립을 유튜브에서 녹화해 전환 영상으로 삽입하기도 하고 제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진의 이야기는 영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스스에 놀러 왔을 때 서진은 이야기를 풀어낼 새로운 도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스스 곳곳에 놓인 하얀 커버에 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은 그림 노트가 상상력을 풀어내기에 적합했나 봅니다. 책에 쓱쓱 이야기를 벌여 놓았습니다. 벌써 2권의 책을 출간해 스스 한편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서진은 원래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합니다. 혼자 자기 방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 거실에 모인 가족들에게 들려주곤 합니다. 이미 한가득 찰랑거리는 서진의 이야기 샘은 스스에 와서 영상 제작으로 물꼬가 트였습니다. 곧이어 그림책 만들기에 물줄기가 닿았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곳으로 서진이의 이야기 샘이 흐르게 될까요?


첫 책을 마치며 커버에 색을 칠하는 스스러 서진



그 시절, 우리에게 스스가 있었다면?


만 매니저도 서진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의 공식적인 증언에 따르면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일을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온갖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집에 오면 무르팍을 베고 누워 조곤조곤 꺼내놓는 아이였다고 하더군요. 제 기억에는 많이 남아 있진 않지만 그 시절 일기장에는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피곤한 어머니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단순한 반복은 아마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멈췄을 것입니다. 만약 그 시절 스스 같은 곳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나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도 보고, 흰 종이에 쓱쓱 칠해도 보고, 음표에 실어 보기까지 했다면 더 즐거웠을 것입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만 매니저 같은 스스에서 만난 어른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물줄기가 더 뻗어나갈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나처럼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또래 스스러의 작품을 보고 동지애 혹은 승부욕까지 느꼈다면 물줄기의 끝은 종잡을 수 없을 겁니다.


또 한 명의 이야기꾼 호준의 사과이야기. 같은 자리에 놓였던 두 책이 며칠 지나 멀찍이 떨어져 각자 컬렉션을 이룸. 서로 책을 읽고 '빅재미'는 아니라며 은근 견제하는 작가 자존심




서진처럼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스스에 속속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 샘이 마르지 않고 창작의 기쁨, 작업의 몰입으로 계속 흐른다면 얼마나 삶이 풍성해질까요?


하지만 작업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쉬이 사라지기도 하고, 열정은 금방 갈피를 잃기도 합니다. 외부의 반응 때문에 단념하기도 하죠. 따라서 시기에 따라 적절한 자극을 주고, 막힐 때 물꼬를 터주며, 다음 단계를 계속 상상하도록 돕는 정교한 구성이 필요합니다.  


만화책 <도서관의 주인>에 나온 대사. 책만 들어있는 삭막한 상자가 아니라 진짜 도서관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멋들어진 공간과 잘 짜인 콘텐츠, 아이패드와 재료바만 구성의 전부는 아닙니다. <도서관의 주인>에 나온 대사처럼 그건 그냥 책이 들어 있는 상자일 테니까요. 공간과 콘텐츠를 가로지르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스스가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만 매니저는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스스러들을 지켜보며 계속 궁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또 한 명의 스스러 이야기를 들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 매니저 드림.



서진의 1호 관객은 언제나 단짝 스스러 '여어어누' 님, 만 매니저는 2호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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