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생스케치
2주 연속 꿀 3일 연휴를 보내고 즐출근 중이실까요? 아니면 출근하기 싫을까요? 지난 3일 연휴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어린이를 둔 분들은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겠죠. 다만 이번 어린이날 연휴는 비가 많이 와서 아쉬웠던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휴 때 부모님 찾아뵌 분 계실까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늘작가는 아버님 산소를 가려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는 어린이는 없으니, 어린이날 가려고 하다가, 비가 너무 와서 토요일로 연기, 그런데 또 비가 와서 다시 일요일로 연기하다 결국 취소했습니다. 아버님 계신 곳이 산이라 비가 그쳐도 무리일 것 같아서요. 5월 마지막주 석가탄신일 연휴에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생겨서 어제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점심을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어머니 점심 사드리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요즘 다시 코로나와 독감이 유행해서 사람 많은 음식점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어, 처가댁 부모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동생과 함께 사는데, 서울에 주로 계시고 작년까지는 고향에 혼자서도 대중교통 타고 종종 내려가셨는데, 올해부터는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혼자서는 가시지 못합니다. 아마 6월 초 징검다리 연휴 때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함께 고향 갈 것 같네요.
어제 어머니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니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 벌써 9년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어제저녁부터 오늘 자정을 넘겨서까지 적은 글입니다.
늘작가 아버님이 계신 곳은 '국립하늘숲추모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국립수목장림입니다.
아버님은 소나무 좋아하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꼭 수목장을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당초 고향 근처 수목장림에 모시려다 아버지 돌아가신 날 '국립하늘숲추모원'이 있는 것을 처음 알고 장지를 바꾸었습니다. 장지가 변경이 되고, 아버님이 주말 끼고 돌아가시는 등 여러 사정으로 5일장을 했습니다. 아버님 장례 관련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생겼고, 찐 인생 공부를 어마하게 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참, 부모님 장지 아직 준비해 놓지 않으신 분은 이곳으로 부모님 모시는 것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개인적으로 강추입니다. 아버님이 계신 이 소나무 아래에, 어머니와 저 그리고 여동생, 제 아내와 아이들(2명)까지는 모두 이곳에 묻힐 겁니다. 이 글 마지막에 국립하늘숲추모원 관련 정보 적은 블로그 글 링크해 드릴게요.
아버지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마 백인백색 모두 다 다를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돌아가신 분이나 현재 살아계신 분 모두) 좋은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이 혼재되어 있는 분도 계실 것이고요.
늘작가 아버지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였습니다. 몇 년 전 블로그에서 아주 자세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저론(?)으로 이야기하면, 흙수저 - 동수저 - 은수저 - 금수저(제가 5~6살부터 초딩 2년까지) - 무수저 - 흙수저(초딩 2년~고딩까지) - 동수저 - 은수저 - 무수저(90년대 초반, 제가 직딩 초년차 때부터~ )... The End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과 추억은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
저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좋지 않은 것부터
추억(기억) 1
가족들(특히 어머니) 이야기 잘 듣지 않고, 본인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셨던 고집불통 아버지.
아버지는 평생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하시고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인생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주위 조언 특히 가족(배우자와 자식들) 쓴소리는 귀 기울었다면 아버지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아버지 인생에 결정타가 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딱 지금 제 나이 정도 되었을 때(제가 대학 졸업 후 회사 들어간 초기) 그렇게 가족들이 말렸던 선거에 나가(그것도 두 번이나) 무수저에서 은수저까지 쌓아 올렸던 전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빛만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것 아실까요? 빚도 상속이 됩니다. 그래서 만약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빚이 있다면 상속포기 신청을 가정법원에 꼭 해야 합니다. 저는 양재동에 있는 서울가정법원에 가서 했습니다. 부모님 재산이 없으니 자식들 재산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으니 좋은 점도 있더군요. ㅋ
그리고 또 하나 술. 아버지의 인생을 망치게 한 것 중 하나는 술이었습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투병생활 하시기 이전까지는 거의 매일 술과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마신 술값만 모았어도 마지막 인생이 그렇게 마감되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뒷바라지를 어머니가 다 하셨어요. ㅠㅠ
그래도 이런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추억(기억) 2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뒷받침하고 격려하고 믿어주신 아버지
그런 고집불통에 술을 많이 하셨지만 자식들은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음 이것도 자식들에 따라 느끼는 정도는 다르긴 합니다만 저에게는 좋은 기억이 훨씬 많습니다.) 금수저에서 망해서 사글셋방에 살 때도 저희들에게 희망 잃지 마라, 너희들이 공부만 잘하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너희들 서울까지 대학 뒷바라지 해준다. 아버님의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 가난했었던 제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술 한잔 하시면 한 손에 포장마차 만두 몇 개 사들고 들어오셨던 모습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부터 저는 객지 생활을 했는데,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찾아오시어 밥도 자주 사주셨어요.
저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재수할 때입니다. 서울에서 노량진 대성학원에서 재수할 때 9월 초 물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때 걱정이 되어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동작구청 뒤 하숙집 골목 앞으로 마중 나온 저를 꼭 안아주면서 "늘작가야 힘내라고 하신... "
그때 저는 재수 생활에 지쳐 살짝 방황할 때였는데, 그 아버지의 포옹으로 다시 힘내서 막판 스퍼트하여 대학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정말 저를 그 어려웠던 서울 유학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는 하는데, 내 몸속의 피 역시 아버지의 이런 좋은 피와 나쁜 피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이런 두 가지 피가 교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어제 또 한 번 숨었던 나쁜 피가 살짝 나왔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나쁜 모습은 닮지 않고 좋은 모습을 닮으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작가가 2년 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술을 완전히 끊은 이유는 이런 아버지의 좋지 않은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잔 술도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제발 죽을 때까지 금주를 계속했으면 하네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좋은 아버지의 기억과 추억을 많이 남겨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와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아버지가 보고 싶네요.
아시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고, 돈도 많이 드는 것 아닙니다. 살아계실 때 직접 자주 찾고 연락드리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직접 찾아뵈지 못했으면, 이 글 읽은 후 바로 부모님께 전화드리세요. 그리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부끄러워하지 말고 꼭 해보세요.
어버이날 아침에
늘~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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