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하시겠어요?

명예퇴직하시겠어요(#1)

by 늘작가

이 책 첫 번째 글을 어떤 것으로 시작을 할까 고민을 하다 최종 선택한 주제는 ‘명예퇴직 권고받던 날 이야기’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일을 겪지만 내가 겪었던 가장 아픈 날 중의 하나가 이날이었다.


2020년 12월 00일 △요일
오후 5시 30분경.



직속 상사인 고위 임원이 나를 불렀다. "□팀장님 잠깐 뵐까요..." 직감적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출처 : 퍼시스 (우리 회사 임원실 분위기와 비슷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을 보니 무슨 말을 할지 느낌이 왔다. 내가 먼저 쿨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번 조직 개편 때 팀장에서 내려가야 하는가 보네요?" 순간 당황 해하는 상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왕 말 꺼낸 김에 계속 질렀다.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동안 저를 팀장 자리에서 지켜주느라 노력하셨잖아요? 올해 초 연봉 면담 때 이야기드렸지만, 저는 이제 팀장 자리 연연하지 않습니다. 보직장에서 내려 가야지요. 올해까지 팀장으로 지낸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물러나야 후배들이 팀장이 되고 조직이 젊어 지지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00님과 회사에게 모두요"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고위 임원은 당황하면서,한편으로는 더 미안해한다. 그리고 뭔가 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안다. "그래 이왕 지른 것 내가 먼저 다 이야기하자"


"아마... 저보고 명예퇴직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명확하게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죄송하지만 저 명퇴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팀장 자리를 떼는 것은 이해하지만, 명예퇴직을 하고 하지 않고는 근로자의 권리입니다. 저는 노동법에 정한 만 60세까지 일하고 싶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일 할 겁니다."


아주 단. 호. 하. 게. 이야기했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물론 제가 회사 계속 다니는 것 쉽지 않겠지요. 회사와 조직에서는 나가 주었으면 할 것이고요, 그런데 그건 조직 입장이고 저는 하지 않습니다. 설령 사장님이 저에게 명퇴를 권유해도 저 하지 않아요. 회사에서 지금 Proposal 하는 패키지에 1년 치 명퇴금을 더 준다고 해도 하지 않습니다. 저 명퇴금 더 받으려고 이런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 아마 이 회사에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하다. " 제가 명퇴를 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출처 : 연합뉴스


첫째,

저는 자존심보다는 제 아이들과 가정을 지키는 것 백배 더 중요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 아이들이 대딩 3, 고사미입니다.(지금 첫째는 대학 졸업하고, 둘째 대딩 3년이다) 아이들 대학 학비 지원 혜택도 크지만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이 "너네 부모님들 뭐 하시니?"하고 물었을 때, 아빠 직업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네요.


둘째,

그리고 솔직히 돈도 무시 못하지요. 대기업 직장인 명함이 주는 장점이 많다는 것 아시잖아요? 이런 실리적인 이유도 물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퇴직하고 밖으로 나가면 이 회사 급여 반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단, 돈은 희망퇴직하지 않는 이유 중 비중이 큰 것은 아닙니다. 저는 먹고 살만큼 돈은 있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요, 저의 인생과 직장인 버킷리스트 1호가 정년퇴직입니다. 직장이 꼭 임원이 되어야 성공하는 것인가요? 후배들에게 임원이 아니더라고 직장에서 이런 케이스로도 성공(?) 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네요, 이 꿈은 제가 해외 주재원 시절부터 꾸어 왔습니다. 그동안 00님과 주위 동료들에게도 계속 이야기해 왔고요. 회사 후배들 중에서 선배님이 꼭 버텨 달라고 지지와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정년퇴직을 해야 제가 현재 꿈꾸는 제2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제 커리어가 제2인생의 중요한 콘텐츠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존심은 회사 계속 다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말 솔직하게 나도 나에게 놀랄 만큼 차분하게 내 입장과 주장을 이야기했다. 사전에 수도 없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생각을 정리해 놓은 것이 위기 때 이렇게 대응이 되는 것 같다.


…(중략)…


그렇게 말했는데, 내 상사는 더 미안해했다. 팀장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차와 직종 팀장 일부는 팀장 자리를 유지한다고.


나는 쿨하게 이야기했다. “그분들은 나보다 더 역량이 훌륭하고, 또 조직이 그분들은 팀장으로 필요하니 그러는 것이고, 저와는 상황이 다르니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라고. 정말 일도 거짓 없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직속 상사를 존경했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회사 내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분과는 회사에서 인연이 깊디.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원하거나 가고 싶은 팀이 있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00님, 저를 데리고 팀원으로 활용할 팀장 혹은 임원 분이 이 회사에서 어디 있겠어요? 어디든 회사에서, 팀에서 저를 불러만 주면 최선을 다해 일할게요. 배차실도 좋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을 하자 이제 좀 마음이 편한지 웃으면서,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다른 조직에 좀 알아보았는데, □팀장님 아무도 데리고 가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부담이 되어서요."


…(중략)…


그렇게 이야기를 한 뒤 고위 임원은 이 말을 하고 마무리를 하였다. " 팀장님은 후배 팀장 밑으로 일하게 되실 겁니다. 다시 한번 미안해요. 그리고 이해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O팀장은 제가 잘 아는 후배이고 이제 저의 팀장이니 불편하지 않게 잘 모시고 일할 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팀장이 지금도 팀장이며, 아마 내년까지 나의 팀장을 할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 이 날 많은 사람들이 고위 임원과 면담을 했었는데, 내가 마지막이었다. 벌써 6시가 넘었다. 자리에 돌아오니 온갖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퇴근 시간이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명퇴 (by 늘작가)




keyword
이전 01화걸어온 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