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석이 비어있다면 자리에 앉아도 된다, 안된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임신 전 생각]
임신 전 나는 임산부석이 비어있다면 앉아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주변에 임산부석이 없다면 지금 당장 배려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고 임산부가 타면 그때 비워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비워두는 게 더 비효율이지 않나?라는 생각이었다.
임산부가 된 지금. 과거 그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하고 나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며 행동한 것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
[임신 후 깨달음]
임신하면 초음파 영상 전송을 위해 모든 임산부가 받게 되는 마미톡이라는 어플이 있다. 어플 커뮤니티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글 중 하나가 임산부석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 임산부석에 일반인들이 앉아 있어서 지하철 타고 가는 내내 서서 가서 힘들었다는 내용이다.
핑크 배찌를 떡하니 보이게 달고 임산부석 앞에 서 있는데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상해 누가 앉아 있으면 그냥 멀리 서 있는다는 내용이 많았다.
[출근길 지하철]
출퇴근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사람으로 가득하다. 참치캔 뚜껑을 열면 참치살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는 것처럼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촉각을 다투는 아침 시간 행여나 지각이라도 할까 이미 꽉 찬 지하철 안으로 매 역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온다.
임신 전에도 여름이나 너무 사람이 많이 타서 몸이 끼이는 날은 숨쉬기도 힘들어 패닉이 올 때도 있었다.
하물며 임산부에게 매일 아침 그런 지하철을 타는 것은 매 순간이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하철 상황 덕분에 특히 아침에는 임산부석이 비어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아주머니, 아저씨, 젊은 아가씨나 남자가 앉아 있을 때도 많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들 눈에 임산부의 핑크 배지가 눈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비켜 달라고 말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럼 다들 비켜줄 텐데. 비켜 달라고 말도 안 하면서 왜 불만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내가 앉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퇴근길 지하철]
퇴근길은 좀 수월하다. 5시 30분 퇴근으로 비교적 한산한 시간이라 그런지 대부분 임산부석이 비어져있다.
어쩌다 일반인 사람이 앉아 있으면 임산부 핑크 배지를 보여주며 임산부 석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금세 자리를 비켜줬다.
다른 임산부들에게도 이 방법을 공유했지만 거의 모든 임산부들이 자기는 그렇게 말 못 하겠다고 했다.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임산부의 심정]
결국,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려는 마음으로 앉아 있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든 누군가 앉아 있으면 웬만한 강심장 임산부가 아니고서는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임신 초기의 산모들은 배가 거의 나오지 않아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다.
임산부에게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은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의 생존의 문제다. 단순히 다리가 아파서 앉고 싶은 것 이상의 의미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의 위험, 중기에는 커진 배와 붓는 발 등 신체의 급격한 변화 등 임신 기간 내내 각각의 이유로 신체의 안정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다. 지금 서 있는 저 임산부가 젊은 시절 나의 엄마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만약, 당신에게
비어있는 임산부석에 앉을까 말까 선택권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