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환희님 공연을
엄마는 트롯이나 가수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가수 환희님이 트로트 가수로 나왔는데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며 칭찬 일색이셨어요.
노래도 잘 부르는데 얼굴도 잘 생기고 심성도 곱고 겸손하다면서요. 심성이 고운 건 어떻게 아셨냐는 저의 질문에 엄마는 대답하셨습니다. '목소리에 심성 고운 게 다 느껴져.'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링크 하나를 보내줬습니다. 가수 환희님의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제목이었어요. 클릭해 보니 보람상조 홍보를 한 시간 정도 들으면 그 뒤에 이어지는 환희님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그 링크를 전달드렸고 운 좋게 엄마와 저 모두 당첨되어 지난 일요일 환희님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당일 6:50부터 입장 시작이었는데요. 저는 남편과 외출했다가 바로 가기로 했고 엄마와 공연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집에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는데 1시간 30분 전에 출발하셨습니다.
평소 약속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는 엄마의 패턴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는데요. 엄마가 얼마나 환희님 만날 생각에 설레고 계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엄마는 일찍 오신 덕분인지 꽤 앞줄에 앉아 계셨어요. 설레하는 엄마 모습이 사랑스러워 또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자리에 앉아 앞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환희님이 찐팬 분들이 가장 앞줄을 가득 채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색 응원봉에 하늘색 티셔츠와 머리띠를 한 분들의 머리는 하얗게 새어있었어요.
그냥 한 두 개 흰머리가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머리 전체가 하얗게 샌 할머니(?)들이라고 하기엔 그 뒷모습이 너무나 젊은 분들이 앉아 계셨습니다.
한 시간 반의 홍보 시간이 끝나고 환희님이 등장하자 그분들은 '환희, 잘생겼다!'를 힘껏 외치며 하늘색 봉을 흔드셨습니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만 빼면 정말 영락없는 10대 소녀의 모습이었어요. 그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들은 왠지 집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며 계실 것 같았는데요.
2025년도 할머니들은 달랐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하늘색 응원봉과 머리띠, 옷까지 맞춰 입고 가수의 이름을 힘차게 소리치며 응원봉을 흔드는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저렇게 할머니가 되어도 저런 환한 웃음으로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구나.", "열정을 다해 좋아하는 누군가 또는 뭔가가 있다는 건 저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거구나."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80세 할머니가 되어 내가 저토록 열정적으로 환호하고 온힘다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될까.
거기에 앞서
지금 나의 심장을 떨리게 하고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의 소중한 시간을 모두 쏟아도
아깝지 않을 것은 무엇일까.
남편의 권유로 가게 된 환희님의 공연은 단순히 공연 이상의 많은 것들을 저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설레는 감정으로 환한 미소로 환희님을 마주하며 새로운 추억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시간과 경험을 선물해 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도 시간 내어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나를 웃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70살, 80살에 나는 무엇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을 것인지.
독자님의 웃음 가득한 80살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