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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지 Nov 25. 2024

생리하는 남편.

 월요일 아침. 원래라면 6시30분이면 일어나서 운동갈 준비를 하는 남편인데 오늘은 조용히 자고 있더라고요. 오늘 일찍 출근해야했던 저 때문에 남편은 곧 일어나서 출근할 채비를 했습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평소보다 조금 늦은 7시20분에 집을 나섰어요. 매일 아침 크로스핏 운동을 하는 남편인데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는 건 싫다면서 운동을 안갔습니다. 저는 먼저 출근을 하고 남편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했어요. 


 9시40분 쯤 남편이 출근 길에 올랐을 시간이 되자 카톡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향수를 바꿔야겠어. 겨울에 어울리지 않아.','운동을 안했더니 커피도 맛이 없어.','후드티는 이제 사지 말아야겠어. 애들이 입는거 같아.'마치 전화가 온 듯 지이이잉, 지이이잉 계속해서 울리는 문자를 보고 있자니 '내가 생리 증후군으로 짜증낼 때 남편은 이런 기분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워낙 차분하고 여유롭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 상태의 남편이었기에 더욱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하고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10시쯤 남편이 출근할 시간이 되자 뭐 마시고 싶냐고 물어 미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뒀다가 전해줬어요.(남편과 저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아침에 남편이 한 말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같이 회사 지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옆 백화점으로 남편의 옷을 사러 갔어요. 20분의 시간동안 열심히 돌아봤지만 마땅한 옷을 찾지 못하고 회사로 복귀했어요. 남편은 여전히 입이 대빨 나와서 퉁퉁 거리는 표정이었어요. 까탈스러운 여자친구 비유를 맞추듯 옷을 사주지 못해 초조한 표정으의 저였습니다. 


 남편은 업무로 먼저 들어가고 아직 시간이 있던 저는 돌아다니면서 마침내 남편에게 어울릴법한 니트를 샀어요. 회사로 복귀 후 남편을 만나 옷을 전해줬습니다. 어떻게든 옷을 새로 하나 사 입혀야 얼굴이 좀 풀어질 것 같았어요. 처음에 옷을 받아들고는 표정 변화가 없더니 화장실가서 입고 오는 얼굴에는 수줍은듯한 미소가 보일듯 말듯 번지고 있었어요. '휴우.'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마음에 들어?'하고 묻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됐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남편을 다시 올려보냈습니다. 


 오후에 남편한테 카톡이 왔어요. 목이 칼칼하다고.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 된 저는 따뜻한 유자 카모마일티와 사과를 사서 남편을 계단으로 불러 전해줬어요. 따뜻한 티를 받아들고 미소지으며 올라가는 남편을 보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생리해서 예민해진 저의 모습처럼 까탈스럽게 짜증부리는 남편을 이리저리 달래줘서 미소짓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였습니다. 아침에 운동을 못해서 저녁에 하고 오겠다던 남편. 집에 들어오자마자 '운동하고 오니까 기분 좋아졌어~?'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며 '오늘 너무 강도가 세서 힘들어.' '쿵'하고 심장이 내려 앉았습니다. 서둘러 영양제와 따뜻한 티를 준비해서 남편에게 건넸어요. 아무래도 잠들기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씻고 나오면 마사지 건으로 다리 마사지를 해주다가 그대로 재워야겠어요. 글을 쓰면서 남편 얼굴을 자꾸 쳐다봤는데요. 영문도 모른채 왜 자꾸 자기 얼굴을 쳐다보냐며 째리는 남편이 정말 귀엽습니다. 남편이 짜증내고 투정부릴 때 제가 옆에서 웃게해 줄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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