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퇴사각입니다. ep3.
나는 어떤 순간에 퇴사각을 잡는가.
아침부터 퇴사각 잡히네.
오늘 아침에도 퇴사각 잡고 온 10년 차 직장인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연달아 두 개의 미팅을 했어요. 각각의 미팅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하고 진행해야 할 업무들이 블록 쌓이듯이 차곡차곡 쌓이며 미팅이 끝났습니다.
입술은 바짝 말라오고 가뜩이나 건조한 공기 덕분에 얼굴은 더 땅겨왔어요. 말라붙은 목을 적시기도 전에 이메일 함에 쌓여있는 유관부서의 각종 업무 요청과 주요 결재 건들 이 보였습니다. '으아아.. 진지하게 퇴사각이다...!' 두 눈을 질끈 감았어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러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자주 퇴사각을 느끼는 건지.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짜증이 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건지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그 원인이 진짜 무엇인지.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평소에도 급한 성격과 조급함으로 일이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던 저의 성격이 갑자기 보였어요.
해결해 보자.
'아! 나는 일이 한 번에 모여서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면 힘들게 느끼는 건가?' 그렇게 인지하고는 펜을 손에 쥐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 들을 하나씩 적어나갔습니다. 노트에 적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보니 희미하게 많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시 펜을 쥐고 할 일들 앞에 우선순위에 따라 숫자를 적었어요. 그러자 오늘까지 해야 할 일과 내일 해도 되는 일, 다음 주에 해도 되는 일 등 일의 일정이 명확해졌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느끼고 짜증이 났는지도 이해가 안 될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마치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불안하고 우왕좌왕하던 발걸음이 가야 할 목표를 정하고 어느 길로 어떻게 갈지를 정하면서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었던 일을 괜히 심각하게 생각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마운 일이었네.
출근하자마자 보인 리더의 결재 반려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반려를 보자마자 짜증이 확 밀려오고 피하고만 싶었는데 차분히 내용을 들여다보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가 보였어요. 내용 작성 과정에서 분명히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놓친 부분들이었습니다.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차분하게 점검해서 재기안을 상신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 기안을 그대로 결재했다면 내가 부족했던 이런 부분들을 깨닫지도 못하고 다음에도 똑같이 했겠지. 하지만 리더가 반려하고 다시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구나.'
아침에는 짜증과 퇴사 욕구로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회사를 나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차분하게 돌아보고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 원인을 생각하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니 해결방안이 보였습니다. 결국 미소 띤 얼굴로 퇴근할 수 있었어요.
만약 지금 퇴사 욕구가 든다면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손글씨로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퇴사각을 잡더라도 늦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또 언제 다시 퇴사각을 잡고 올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