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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Oct 14. 2019

배를 뒤집고 누워도 좋을 뚝배기 비빔밥

진정한 안정감을 줄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따뜻한 촉감이 몇 떠오른다. 배를 내밀고 뒹굴 드러누운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쓸어내릴 때, 이불속에 넣어 데워 둔 폭신한 수면 양말에 발을 푹 집어넣을 때, 그리고 적당히 뜨거운 차를 담은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 쥘 때. 바깥엔 눈이 내리고, 수면 양말을 신고 무릎 위에 누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차 한잔 마시면 나도 모르게 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두 눈을 감게 된다.


무릎 위의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이 아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까, 내가 너를 해하지 않을 거라는 걸. 고양이는 진정한 안정감을 느낄 때에만 배를 뒤집고 누워 애교를 부리거나 잠을 잔다. 배를 내밀고 세상 편안하게 내 손을 허락한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이웃집의 작은 아기 돼지들이 떠오른다. 조금 떨어져 있는 이웃집은 직접 가축을 길러 고기를 마련한다. 얼마 전엔 뿔이 멋진 염소 두 마리였고, 이번엔 자그마한 인디언 돼지들이 코로 땅을 파헤치고 있는 모습을 오며 가며 본다. 무척 자그마한 종이라 성인 돼지도 강아지 크기 만해서 무척 귀엽다. 아기 돼지 세 마리는 우리가 다가가면 무서워서 임신한 엄마 돼지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게 어찌나 앙증맞은지.


그중에서 용기 있는 아기 돼지 한 마리가 손을 내민 남자 친구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내게도 가까이 와서 만져보라고 하는데 차마 그러질 못했다. 다음 주,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이 아기 돼지는 사라질 것이다. 이 돼지들은 사라지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사람에게 더 잘 다가오는 저 아이가 당장 첫 번째 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 고양이에겐 평안한 내일을 약속하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돼지에게도 안심하라며 쓰다듬어 줄 용기는 내게 없었다.


마음도 손도 차가워진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 둘을 따뜻하게 해 줄 음식을 만들어 먹자. 찬장을 뒤지다 작은 뚝배기를 보았다. 여기에다 돌솥 대신 비빔밥을 해서 데워 먹으면 좋겠다. 마침 얼마 전 장에 다녀온 터라 냉장고가 풍성하다. 호화롭게 야생 버섯도 조금 볶아서 넣었다. 버섯 향을 살리고 싶으니 고추장 대신 된장을 넣어야지.


밥을 먹다 두 손으로 뚝배기를 살짝 감싸 쥐었다. 알록달록한 비빔밥과 뜨끈한 뚝배기가 평온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까의 아기 돼지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다. 어느새 고양이가 무릎 위로 올라와한 입 달라며 애교를 부린다.      





‘배를 뒤집고 누워도 좋을 뚝배기 비빔밥’


재료 : 잡곡밥, 각종 나물 혹은 채소, 참기름, 김, 된장, 마늘 조금, 뚝배기


우선 밥을 맛있게 짓자. 잡곡밥은 잡곡밥인데 여기에 말린 표고버섯이나 채소 등을 함께 넣어 지으면 더 좋다. 난 말린 야생 시금치를 넣었는 데 있으면 곤드레를 넣으면 더 좋겠다.


냉장고에 이미 (젓갈이 안 들어간) 나물이 풍부하게 있으면 딱히 더 준비할 게 없다. 난 나물을 만들어 두는 편이 아니라서 새로 채소를 썰어 볶았다. 내가 넣은 채소는 케일, 양배추, 야생 버섯, 가지. 이 채소들은 모두 따로 살짝 볶아주었고 (가지는 볶을 때 기름을 많이 쓰기 싫으면 물을 넣고 찌듯이 볶아주어도 좋다), 상큼한 맛이 있으면 싶어 채 썬 당근을 식초에 절여 준비해두었다.


소스를 만들자. 작은 볼에 된장 두 스푼, 참기름, 후추, 다진 마늘, 물 조금을 넣고 열심히 섞는다. 고춧가루도 넣으려다 야생 버섯 맛을 더 즐기고 싶어 그만두었다. 맵지 않은 고추가 있다면 다져 넣어도 맛있을 것이다.


작은 뚝배기에 밥을 담고 채소를 색색이 나눠서 올린다. 그다음 뚝배기 채로 가스 불에 천천히 데운다. 누룽지가 생기는 소리, 지지 지직 소리가 나면 조금 기다렸다가 불을 끈다.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단계, 소스 넣고 열심히 비벼서 따뜻하게 먹자.


포인트라면 뚝배기에 밥을 담을 때 최대한 펼쳐서 담는 것. 그러면 더 넓은 면적의 누룽지가 생겨서 고소하다. 집에 여러 개의 뚝배기가 있는 집은 거의 없을 터, 이 메뉴는 혼자 밥 차려 먹을 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식사가 생각나면 해 먹는 요리. 아니, 혼자여야만 느긋하고 따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지긋이 잡아주는 손이 없어도, 푹신하게 무릎을 데워주는 고양이가 없어도, 뚝배기와 함께 마음과 손이 따뜻해지는 식사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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