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땐 완성품 모양도 모르고 설명서 따라 만들었더랬다. 만들어 놓고도 왜 굳이 면마다 밖음질과 홈질 두 번을 했어야 했는지, 왜 솔기는 죄다 밖으로 나와 있는지, 이렇게 작아도 되는 건지. 저고리부터 손싸개, 발싸개, 턱받이, 딸랑이, 인형, 속싸개 세트를 만들어 놓고도 구체적인 사용 방법을 몰랐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그랬다. 유도 분만이 무엇인지, 유도 분만이 잘못되었을 경우, 아이와 내 몸에 어떤 일이 생기는 건지, 아이가 태어나면 내 시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몰랐다. 옷솔기조차 상처가 될 수 있는 연약하고 작은 아이를 내 품에 안고서야, 그제야 "공포에 가까운 책임감과 행복"을 보게 되었고, 우주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새벽, 둘째 아이의 저고리를 만들었다. 확실히 첫 아이 때보다 능숙하다. 슥슥슥. 그러다 문득 이 능숙함이 둘째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서툴러서 과하게 진심이었던 첫 아이와의 시간 그대로를 줄 순 없겠지만, 새롭게,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내게, 아이에게 약속.
둘째 아이 출산을 한 달 정도 남기고 썼던 글이다. 첫째가 중1, 둘째가 초4. 현재. ‘낳고 키우는’을 ‘입학하고 생활하는’으로 바꿔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둘째 아이가 재미난에 입학하고, 새로운 반 부모들을 만나며 생각했다. 난 재미난 2회 차 삶을 살아. 서툴러서 과하게 진심이었던, 그래서 투박하고, 파란만장했던 1회 차 삶을 지나 능숙함이 새로움을 잡아먹지 않도록 조심했던 2회 차 삶을 살았다.
지금은 큰아이가 재미난 중등에 입학한 덕에 재미난 3회 차 삶을 살고 있는데, 주로 이 글을 같이 쓰고 있는 ‘산책 멤버’와 함께 하고 있다. 재미난 7년 차. 두 아이를 보내고 있고, 중등 진학까지 했으니 선배 가정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중등 가정 모임을 며칠 전부터 소소하게 분주했다. 입학하는 친구들이 보드게임을 좋아한다는 정보 입수! 아이와 의논해 새 보드게임을 마련했다. 아이 이름과 양육자 별칭을 외우고, 카톡 프로필로 성향을 짐작해보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1 가정끼리 모임을 두 번 정도 주도했는데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오리백숙도 준비했다. 내 딴에 할 줄 아는 건 다 한 셈인데 다행히 선배 가정이어야 한다는 의무와 소소한 실천은 여기까지였다.
두 번째 모임이었다. 책을 출판할 멤버를 모집한다고 했다. 손을 들었다. 새로운 기운이었다. 3회 차 삶 친구들도 나와 속도가 다른 이들이다. 빠르다. 궁금한 것과 하고 싶은 것에 과감했다. 힘이 좋다. 1,2회 차 경험 덕분이겠지. 이번엔 불안이나 경계 없이 꽤 자연스럽게 이 기운에 올라탄 듯하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우름 엄마예요.’라고 인사하는 순간이 많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당연히 중요하지 않았다. 명함과 직책에 기대 살았던 건지 명함 바깥세상은 헛헛하고 조심스러웠다. 내가 아이고, 아이가 나인 것만 같아서 몸도, 마음도 뻣뻣했다. 명함 밖 나는 명함에 숨겨져 있던 타고난 기질을 더 투명하게 내놓더라. 예민하다. 겁이 많으니 경계가 심하다. 관계를 맺는데 느려터진다. 아이를 낳고 더 심해졌다.
재미난마을에 와서도 이 기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을 줬나 싶으면 저만치 도망가 있고, 같이 가나 싶으면 망설였다. 친구들이 이런 나를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이고 지고 달렸다. 덕분에 나는 나만의 속도와 성향을 존중받으며 아이와 나를 안전하게 분리하고, 엄마라는 자리를 소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