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사람들은 아이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고, 소통하기 위해 평어를 사용한다.
“연두~나 잠깐 나갔다 올게."
"백호~어디가?"
"해피~안녕!"
재미난 어른들은 스스로 지은 별칭을 쓴다. 연두, 백호, 해피는 실제 재미난 교사. 아이들은 마을 어른, 교사들과 평어로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재미난 학교와 마을은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지키고 가꿔왔던 것을 돌아보고, 정비하고, 서로 축하하고 또 응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독특한 평어 문화를 검토하는 일을 포함해서.
영화 <투모로우>를 인상 깊게 보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과 가족애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들은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의 아들 일행을 태운 헬기가 높이 뜬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하다 현실로 돌아오며 느긋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폐허가 된 뉴욕을 비출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건물 옥상 곳곳에서 생존자들이 나타났다. 아. 주인공 일행만 생존한 게 아니었다. 곳곳에 자신들의 서사로 생존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작년 여름. <말 놓을 용기>를 보자마자 이 장면이 떠올랐다. 평어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대안학교와 학교를 품고 있는 마을공동체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공동체가 있다니! 책을 내다니! 숨도 쉬지 않고, 책을 주문하고, 마을 책동무들에게 알리고, 책모임을 열었다.
저자는 평어를 ‘<이름 호칭+반말>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말’로 규정한다. 반말의 구조를 사용하지만 반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 한국말에는 이제 반말과 존댓말이 있고 또한 평어가 있다"라고 선언한다. 평어는 반말과는 달리 한쪽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수평적 관계를 전제한다. 속이 후련하다. 그동안 평어 문화를 실천해 오면서 입에 맴돌았던 옹알이가 드디어 말이 된 느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재미난은 아이들과 '수평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평어를 사용한다. 저자도 평어 사용을 존비어체계에서 만들어진 '관계와 문화를 바꾸는 실전 평어 모험'으로 규정한다.
'수평적 관계'의 수평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될까? 수평은 고정될 수 있는 것일까? 이성민은 그의 또 다른 책에서 자전거 타기를 예로 들어 수평적 관계를 위한 평어 사용 설명을 한다. 자전거 타기를 상상해 보라. 왼쪽 발을 구른다. 그리고 적당한 리듬으로 오른쪽 발을 구른다. 그렇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은 쉬지 않고 리듬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
수평적 관계란 자전거 타기와 같다. 매 순간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관계이다. 수직적인 관계와 친밀한 무례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수평적 관계를 위한 평어 사용도 마찬가지. 평어는 존비어체계가 강화하고 있는 수직적 관계와 거리를 두고, 반말의 구조 때문에 빠질 수 있는 반말의 무례를 경계해야 한다. 발을 계속 굴러야 한다.
가끔 오랜 습관으로 어른의 권위를 써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하다 아이들에게 걸려 민망할 때가 있다. 반성한다. 반말의 무례는 아이들보다 어른인 내 쪽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이다. 그리고 자주 고맙다. 실수에 민망해하며 반성할 수 있는 어른으로 살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