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재미난학교는 부모들이 학교 운영을 한다. 국공립학교에도 있는 학부모회뿐 아니라, 여러 상설위원회와 부설기관이 있다. 나는 재미난도서관 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자천이었다. 사람들에겐 나의 꿈 중 하나가 마흔 살에 청소년 도서관 관장이 되는 것이었노라고, 조금 늦었지만 꿈을 이뤘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 없이 사실이다.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 하나가 더 있는데, 그즈음 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다. 거의 20년 동안 한 직장에 근무하며 내 것이라 여기고 만들어 온 이야기가 내 것이 아니라는 슬픔. 이야기의 방향을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좌절, 내 언어로 내 마음대로 세상에 떠들 수 없다는 허무. 내 몸을 관통해 생산된, 내 언어로 조직할 수 있는 삶이 간절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도서관 관장. 요즘 말로 부캐!
방학엔 1박 2일 도서관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했고, 도서관 방학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운영했다. 학기 중에는 도서관 잔치를 준비하고 외부 지원 사업에 응모해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 밤에는 심야도서관 <夜, 재미난>을 열어 마을 어른, 청소년,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심야도서관의 시간을 꺼내 나누는 이야기 마당도 벌였다. 책모임을 꾸리고 마을 축제에 참여해 학교 홍보도 했다.
이 모든 걸 혼자? 그럴 리가. 불가능하다. 재미난도서관은 도서관마법사라는 부모와 교사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있다. 내내 도서관마법사와 함께 했다.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강하게 연대하며 1년을 지냈다. 의견이 다를 때도, 같을 때도 서로의 선의를 확신하니 담백하게 다정할 수 있었다. 학교를 운영하는 의무와 피곤보다 삶에 가치 있는 이야기를 남겼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지내면서 서로 작은 걱정도 했다. 올해 에너지를 몰빵 하다 지치거나 사라지면 어쩌나. 하지만 걱정하면서도 우린 알고 있다. 오늘 있는 에너지를 나눠 쓴다고 내일용이 남아있는 건 아니다. 오늘 에너지를 힘껏 탕진해야 내일 에너지도 생긴다. 혹시 내 에너지를 다 쓰면 잠깐 업혀 가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쉬어가면 되고. 비인가 대안학교인 재미난은 이렇게 만들어져 왔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비용과 이익을 계산해 예측가능성을 높여 지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대동천에서 돌을 올려 담을 쌓고,
도서관 미끄럼틀 각도를 재던.
마을공유공간 카페를 열고
마을기업을 기획하던.
한 칸 마켓을 만들고,
공유책장을 운영하던.
귀 얇고, 신중하지 못한, 마음 약한 사람들이 지어온 이야기.
올해, 2024년은 재미난학교 20주년, 재미난도서관 10주년의 해이다. 9년의 역사에 작년 한 해가 더해져 학교도서관 운영을 넘어 마을도서관으로 확장을 꾀할 힘이 만들어졌다. 나는 경험을 기획하고, 기록하는 공간운영자로서의 나를 발견했다. 물론, 관장직을 자천했던 것처럼 자평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슬픔, 좌절, 허무의 색은 아니니 계속 가보기로 한다. 내 몸과 언어로 재미난을 계속 지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