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막후파워 미치 매코널의 선택은? 그에게 영향을 끼칠 민주당 3인방
현직 대통령이 사주하여 일으킨 초유의 미 의회에 대한 반란(insurrection)은 미국 정가에 충격파를 던졌다.
밋 롬니, 리사 매카우스키 상원의원이나 래리 호건 메릴랜드주 주지사 등 중도보수 공화당원들은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철저히 자본의 편에 서서 공립교육을 저버려 최악의 장관이라 불리웠던 트럼프 충복인 벳시 드보스 교육부장관은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었다"며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었던 언론인들조차 거리를 두고 있다. 우파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거리두기가 눈에 띈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 논설실이 "사임하라"고 트럼프를 압박했다. 그동안 친트럼프 언론이자 트럼프의 음모론을 옹호해왔던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조차도 트럼프에게 "이제 끝났음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이 사건이 미국 정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트럼프가 맘에 들진 않았지만 인기를 끌어모을 수 있다고 판단해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던 공화당은 앞으로 트럼프와 결별할 수 있을까? 트럼프와 공화당, 그리고 미국 정치의 앞날을 보기 위해 바로 이 사람들을 주목해야 한다.
1.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은 트럼프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트럼프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대표적인 공화당 정치인이다. '무한정의 정치헌금'을 대놓고 옹호하여 지금의 공화당 (& 민주당)의 거대한 정치자금 구조를 만든, 워싱턴의 초특급 파워브로커다.
매코널의 최대 목표는 권력. 오바마 행정부 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자 원내대표가 되어 오바마가 의회를 통해선 거의 아무 것도 못하도록 사사건건 반대했다. 3권분립 중 한 축인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매코널은 트럼프 임기 동안 3명의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는 데 성공해 대법원을 확실히 보수성향(6:3 비중)으로 만들었고 백여명이 넘는 보수성향 연방판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매코널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트럼프의 차별발언,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를 지난 4년 동안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그 결과? 워싱턴 최고 파워라고 불리웠던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졌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 진 것은 물론 트럼프가 선거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2석 모두 민주당에게 내주는 결과를 빚었다. 매코널의 '최고 워싱턴 막후 파워'의 위치를 당분간 (중간선거 전 2년) 잃게 된 것이다.
매코널의 주판알은 복잡하다. '의회 폭동'이 없었더라면 계속 트럼프와 그 지지층의 커다란 목소리에 일정 정도 기대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미 공화당 의원 후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바로 'primary(지역 경선)'다. 지난 4년간 지역에서 트럼프에 비판적인 공화당 후보는 아예 지역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 유권자들이 사상검증하듯 솎아냈기('primaried') 때문이다. 그 결과 미 의회에는 이미 다수의 트럼프주의자들과 심지어 "민주당원들이 어린아이 피를 마신다"는 식의 음모론자인 '큐아넌주의자'들까지 공화당 이름으로 진출해 있다. 대선 경선후보로도 나왔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아예 극우주의자들이 판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팔러(Parler)에서 활발히 활약하며 선거 결과에 끝까지 불복했다. 하원에선 100명이 넘는 공화당 의원들이 선거 결과 불복에 표를 던졌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가 그런 트럼프주의자 중 하나다.
하지만 1월 첫주에 워싱턴DC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런 공화당원들조차 더이상 트럼프를 실드쳐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대통령이 사주해 미국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는 장면이 전세계에 중계되면서 공화당 정부 때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들 (ex. 콜린 파월)은 물론이고 공화당 지지 국민들 상당수도 트럼프가 바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트럼프와 결별할지, 트럼프에게 애매하게 묻어갈지 공화당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트럼프를 제외하면 아직 공화당 1인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미치 매코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반대편" 사람이 3명 있다.
https://www.npr.org/2020/11/10/933513008/essential-mitch-the-relationship
1.
조 바이든 & 낸시 펠로시
바이든은 미치 매코널과 수십년간 상원에서 함께 일했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오바마 대신 상원에 가서 매코널과 담판할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바이든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독단적으로 뭔가 밀어붙이는 것을 "아직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원이 민주당 다수로 넘어오긴 했지만 안정적인 다수가 아니기 때문에 2년 후 중간선거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 1기 행정부때 초기 2년 동안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을 밀어붙인 후 중간선거에 패배하고 그 이후엔 내내 손발이 묶였던 상황을 반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치 매코널(과 상원)을 달래 가며 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도발은 바이든에겐 '유리한 카드'다.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도 상대편인 공화당에 대해 '트럼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지렛대를 갖게 됐다. 당장 미 의회가 습격당한 날, 앙숙인 펠로시와 매코널이 함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상의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이고 상원에게 기소해달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당은 여러 가지의 유리한 정치적 옵션을 쥘 수 있다.
2.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 지명자
바이든 행정부의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메릭 갈랜드는 매코널과는 징글징글한 인연이 있다. 오바마가 2016년 대법관에 지명했던 중도 성향의 인물인 갈랜드는 흠잡을 데 없는 이력을 갖고 있지만 미치 매코널이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엔 대법관 인준을 할 수 없다"며 인준 심리를 여는 것 자체를 거부해 대법관이 되지 못했던 인물이다. 갈랜드가 법무장관이 되면 (인물 자체를 흠잡기 어렵고 매코널이 두번이나 딴지걸 수는 없는 데다가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었으므로 법무장관 인준이 유력하다) 이번 폭동과 관련해 다음 분야에 더 확실히 손댈 수 있게 됐다.
1)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이미 트럼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탈세 등 수십개의 수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겠다고 바이든이 밝혀온 바 있고 트럼프가 막판에 셀프 사면을 할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미 법무부가 이 수사를 계속할지 말지, 더 세게 추진할지를 최소한 '정치적으로 활용'할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2) 통신품위법 230조 손보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에 대한 책임소재 강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폭력을 미화하고 폭동 모의를 하는 행위, 새롭게 떠오르는 극우 플랫폼인 팔러 등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소셜미디어 기업과 빅 테크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높으며, 이미 구글/페이스북에 대해서는 반독점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트위터가 트럼프 계정을 영구 정지시킨 것이 이미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규제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20년 전에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 조항(소셜미디어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의 행위 때문에 소송당하는 것을 면책하는 조항) 을 손보는 작업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3) 인종차별적인 미 경찰 개혁: 이번 사건을 통해 작년 '블랙 라이브즈 매터' 흑인들이 벌인 워싱턴DC 시위 때와 사뭇 다르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미 경찰의 민낯이 드러났다. 즉 흑인들이 시위할 때는 별거 아닌데도 사람을 죽이는 경찰들이, 백인들이 대부분인 의회 습격 시위에서는 시위대들과 셀카를 찍어주거나 아예 문을 열어주는 등의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흑인 상원의원 코리 부커의 울분에 찬 연설을 보라)
바이든 대선운동을 하면서 바이든에게 따라붙은 꼬리표 중 "경찰예산 삭감하려고 하는 거냐(defunding the police)"란 게 있었다. 미국 경찰연합 자체가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고, 상당수의 남부 주에서는 노예탄압을 위한 인력으로 경찰이 형성되었던 뿌리깊은 인종차별 역사가 있어 경찰은 그동안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인종평등적 경찰개혁조치'에 알레르기를 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썼던 '미국 경찰이 자꾸 폭력경찰이 되는 이유' 참조)
이제 경찰이 트럼프 세력에 의해 공격받고 1명이 사망한 상황이다. 백인우월주의를 '국내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저지하려는 드라이브를 법무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갈 수 있다.
내가 미국 정치에 대해 자꾸 쓰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같이 비이성적 포퓰리스트와 이들 세력이 퍼뜨리는 선전선동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상, 그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한편 협치 따위는 개나 줘버려 라는 마음가짐이 생겨나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세력이 국민을 호도하는 것, 정부의 운영 효율이 떨어지면서 결국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일련의 악순환 말이다. 미국이 상처를 어떻게 봉합해 가는지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와 정치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대선 #트럼프의망령 #오늘은또무슨사건이일어나려나